<폴아웃> 공식 포스터

<폴아웃> 공식 포스터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지난 11일 아마존 OTT 프라임 비디오에서 <폴아웃>이 공개됐다.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의 <아케인>, HBO <라스트 오브 어스>, 파라마운트 <헤일로> 등을 통해 입증된 게임 영상화 열풍에 가세한 작품이다.

이들 작품에는 공통된 특징 하나가 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실제 삶을 연상시키지는 않을 정도로 장르적 특성을 가미한, 일종의 대안 현실을 구축한다는 점이다. 핵 전쟁이 일어난 후의 세계를 다루는 <폴아웃> 역시 흥미진진한 세계관을 펼쳐내되,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를 하나하나 짚어보면 드라마를 보다 깊이 향유하고 싶은 관객들, 그리고 개원을 얼마 앞두지 않은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주인공 루시 매클레인(엘라 퍼넬 분)은 핵 전쟁 후 미국의 시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지하도시 '볼트 33'의 일원이다. 그는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삶을 계획하고 있지만, 어느 날 지상의 약탈자 집단 레이더들이 쳐들어와 그의 아버지를 납치해 간다. 루시가 부친을 되찾을 목적으로 볼트 밖 세계로 걸어 나가면서부터 <폴아웃>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버지를 되찾기 위해 몰데이버라는 사람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루시는 몰데이버가 현상금을 내건 박사의 머리를 들고 사막을 횡단하는 등 모험을 이어간다.
 
'의회정치' 없이는 사회 진보도 없다

<폴아웃>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설정은 대비되는 두 사회의 공존이다. 핵전쟁으로 황폐해진 세상은 루시가 살던 '볼트'와 그 밖의 '황무지'로 나뉜다. 하지만 결말 전까지 본작은 두 세상 중 어느 하나가 옳은 사회인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볼트의 사람들은 평온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나 상당히 폐쇄적이고, 선출된 한 명의 감독관이 중대한 결정을 도맡는다. 한편 황무지는 볼트보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개인의 삶을 책임지는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려 서로를 불신하게 되었고, 가난을 해결하지 못한 이들은 식인을 선택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구도를 단순화할 수도 있었다. 황무지를 단순한 무법지대로 설정하고, 볼트를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으로 밀고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폴아웃> 제작진은 그런 단순한 해법을 거부한다. 두 사회가 충돌하며 더 나은 한쪽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 식의 해법을 거부한 것이다.
 
<폴아웃> 속 두 세상이 별다른 변화 없이 답보하는 이유는 의회주의의 부재에 있다. 황무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볼트 역시 선출직 감독관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주어진다. 작중에서는 볼트에 붙잡힌 포로를 교화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포로를 몰살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대립은 토론과 합의로 이루어지는 대신, 감독관의 독자적인 결정으로 강제로 끝을 맺는다.
 
의회주의는 숙의의 제도인 동시에, 독단적인 정치를 막는 장치이기도 하다. 삼권분립 구조 속에서 의회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는 사례를, 우리는 21대 국회의 여소야대 대치와 미국의 트럼프-펠로시 갈등을 통해 확인해 왔다. <폴아웃> 속 세상에도 제대로 된 의회가 존재했다면, 작중의 끔찍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아버지를 찾은 루시는 자신이 사는 세상에 대한 진실과 마주한다. 핵전쟁 이후 황무지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문명을 재건해 왔으나, 변화의 주도권을 놓칠까 봐 불안해진 볼트 사람들이 황무지 사람들에게 또다른 원폭 공격을 가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이 독선적인 학살의 원흉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루시는, 마지막에 가서는 몰데이버로 대표되는 황무지인들의 손을 들어 준다.
 
한 사람의 결정으로, 한 소수 집단의 결정으로 세계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그것이 대통령과 행정부의 폭주이든, 의회 다수당의 오만이든 간에, 이러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명심하길 바란다. 토론과 숙의 없이 이루어진 세계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으며, 공들여 세운 정책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지루하고 피곤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22대 국회는 의회정치의 근본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치길 바란다.
 
정책 주도로 '정치의 광기' 극복해야
 
 <폴아웃> 스틸컷

<폴아웃> 스틸컷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그렇다면 <폴아웃> 속 세상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주체는 무엇이었을까? 등장인물들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본작 속 여러 사건을 통해 아젠다의 부족이 사회를 답보 상태에 빠뜨렸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루시와 티격태격하면서도 몰데이버를 찾기 위해 협력하는 인물 구울은 핵전쟁 이전,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냉전 시기부터 미국에서 살아 온 인물이다. 그는 당시 동료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자, 이념에 경도된 정부를 탓하는 대신 "그 친구 왜 그랬대?"라고 묻는다. 현대에 와서야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이 주류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는 사실과 개인은 지도자들이 선정한 아젠다에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 주는 장치다. 이념 논쟁에 빠진 사회는 결국 그 구성원들을 버리게 된다.
 
게다가, 한 번 파괴된 공동체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이미 사라진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를 처음부터 재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핵전쟁 이전의 정치 구조 역시 볼트에 그대로 답습된다. 공동체가 져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 말이다. 루시는 아버지가 납치된 직후 수색팀을 꾸려 지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볼트의 독선적인 감독관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회가 구성원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루시는 혈혈단신으로 지상에 나설 수밖에 없던 것이다.
 
정치가 돌보아야 할 구성원들을 내버리고 이념 전쟁에 휩싸이는 것은 그야말로 광기에 가깝다. <폴아웃>은 이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개인의 이야기를 우직하게 그려낸 드라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드라마 속 사회가 실제 출현할 징후는 현실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22대 총선은 제도권 언론에서부터 줄줄이 지적할 정도로 정책이 부재한 선거였다.
 
우리는 날마다 심해지는 기후위기, 곳곳에서 발생하는 혐오범죄와 AI를 내세운 기술의 인권침해 등,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정쟁만으로는, 심판론만으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정쟁이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실제 정치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정책 경쟁으로부터 등을 돌리면, 대한민국 역시 <폴아웃> 속 세계와 같은 디스토피아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러니 이미 몇 번이고 들은 말이겠지만, 22대 국회는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도덕

아버지를 찾기 위해 모험에 나선 순수한 소녀가 세상의 진실을 마주하고 지친 투쟁가가 되기까지, <폴아웃>은 순진무구하던 루시의 성장을 거침없이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루시가 결코 인간성을 저버리지는 않게 하는데, 이는 바로 루시의 절대 법칙으로 드러난다. 그는 스스로 마련한 도덕 법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시체를 먹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고, 누군가 자신을 구해 준다면 그 신세를 되갚는 것이다. 여타 미디어의 주인공이었다면 쉽사리 잃어버렸을 소양이다. 그렇게 루시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강인하고, 강인하면서도 이타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국회의원들 역시 정치에 있어서 루시처럼 도의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나라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기꺼이 따라야 할 원칙 말이다.
  
조력자 인물 중 하나인 막시무스는 강철 갑옷 '파워 슈트'를 입고 황무지를 활보하는 '기사단'의 일원이다. 갑옷을 입기 전까지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따돌림 당하는 등 상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갑옷을 손에 넣은 후에는 자기 아랫사람들에게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똑같이 자행하는 등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존재로 변모한다. 갑옷을 권력으로 치환하면 작금의 현실도 드라마 속과 거의 다르지 않다. 22대 국회의 당선인들은 파워 슈트를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당장은 자신이 막강한 힘을 얻은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그 힘은 언제든지 주권자가 다시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지금까지 <폴아웃> 속의 정치적 요소를 알아보며 그것을 대한민국의 현실에 적용해 보았다. 본작이 감상을 마친 유권자들에게는 선출한 정치인들을 끝까지 감시할 힘으로, 정치인들에게는 경계를 촉구하는 각성의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드라마 폴아웃 아마존프라임비디오 엘라퍼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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