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과 신태용, 한국축구의 두 레전드가 올림픽 진출을 놓고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 승부를 앞두고 있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23세 이하 축구대표팀과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대표팀은 오는 26일 오전 2시30분(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AFC U-23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에서 격돌한다.
 
한국은 B조에서 UAE, 중국, 일본을 모두 제압하고 3연승을 달리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인도네시아는 카타르에 패했으나 호주와 요르단을 연파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A조를 2위로 통과했다.
 
인도네시아는 이번 대회가 AFC U-23 아시안컵 첫 본선 진출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134위에 불과하다. 신태용 감독은 동남아축구의 변방에 불과하던 인도네시아를 첫 출전 만에 8강으로 이끄는 눈부신 업적을 세웠다.
 
8강전은 양팀 모두에게 이번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승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U-23 아시안컵은 2024 파리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을 겸한다. 대회 1~3위 팀이 올림픽 본선에 직행하고, 4위는 아프리카 팀인 기니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쳐 본선 진출 여부를 결정한다. 4강까지 올라가면 패하더라도 한 번 더 기회가 남아있지만, 8강에서 탈락하는 팀은 올림픽 출전 가능성이 사라지게 된다.
 
한국축구로서는 만일 조 2위로 밀렸다면 8강에서 부담스러운 홈팀인 카타르를 만날 수도 있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본을 꺾고 조 1위를 차지하면서 그나마 수월한 인도네시아를 만난 것은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인도네시아에 크게 앞서고 있으며 U-23 대표팀 간 역대 전적에서도 5전 전승으로 우위다.
 
다만 한국축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신태용 감독이 사령탑이라는 것과, 그의 부임 이후 최근 인도네시아 전력이 급상승했다는 점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인도네시아는 조별리그에서 아시아 최강급 전력으로 꼽히는 호주(피파랭킹 24위)를 1-0으로 잡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A대표팀이 최근 열린 아시안컵에서 한국인 김판곤 감독이 이끌던 약체 말레이시아에 비기고, 한 수 아래로 여기던 요르단에게 완패하는 졸전을 펼친 것은, 황선홍호에게도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난 놈' 신태용 감독은 한국축구의 레전드이자 몇 년 전까지 태극군단의 수장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프로축구 성남에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와 FA컵 우승을 일궈냈고, 신 감독은 8년 전에는 올림픽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U-23 대표팀 아시안컵의 준우승과 리우올림픽 8강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U-20 대표팀과 A대표팀 지휘봉까지 연달아 잡으며 월드컵 무대도 밟았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는 강호 독일을 격파하는 '카잔의 기적'를 연출했다.
 
하지만 신 감독은 국내에서는 능력과 공헌도에 비하여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편이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이 끝나고 신 감독은 국내 지도자들에 대한 저평가 분위기 속에서 대한축구협회와 재계약에 실패했다.
 
야인이 된 신 감독이 눈을 돌린 것은 의외로 축구변방으로 꼽히던 인도네시아였다. 2020년부터 인도네시아 A대표팀과 U23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은 빼어난 용병술로 여러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부임 첫해 2020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챔피언십(스즈키컵) 준우승, 2021년 동남아시안게임 동메달, 2023년 16년 만의 아시안컵 본선 진출과 16강이라는 쾌거를 잇달아 이뤄냈다. 이로서 신 감독은 사실상 '제2의 박항서(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신드롬'이라고 과언이 아닌 성과를 일궈내며 해외무대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신태용의 인도네시아와 황선홍호가 아시안컵 토너먼트에서 만날 가능성은 일찌감치 거론된 바 있다. 대회 개막 전에는 언더독인 인도네시아의 조별리그 통과 가능성이 희박해보였지만 의외로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며 설마했던 모국과의 만남이 실제로 성사됐다.
 
신 감독은 8강전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 중 어떤 상대를 만나고 싶느냐는 질문에 "한국과는 8강보다는 결승에서 만나 함께 올림픽에 갔으면 좋겠다"고 답한 바 있다. 아무래도 올림픽 진출이 걸린 단판승부에서 모국의 앞길을 가로막아야 하는 상황이 신 감독에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신 감독이 국제무대에서 한국과 맞대결을 펼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8강전은 곧 신태용과 황선홍, 두 한국인 레전드 감독의 지략대결로도 관심을 모은다. 두 사람은 한국축구의 레전드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커리어는 묘하게 대척점에 있다.
 
'황새' 황선홍 감독은 포항제철(현 포항 스틸러스)과 세레소 오사카, 수원 삼성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약했다. 클럽무대에서도 J리그 득점왕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역시 선수 황선홍 커리어의 핵심은 국가대표 경력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군림하며 4회 연속 월드컵 본선출전과 한일월드컵 4강 신화, A매치 103경기에 출전해 50골(역대 2위)을 넣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반면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린 신태용 감독은 선수 시절 국가대표팀에서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대신 성남 일화(현 성남FC)에서만 무려 12년 동안 활약한 '원클럽맨'이자 K리그에서 다수의 우승과 MVP를 차지하며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지도자로서의 커리어 차이도 비슷하다. 신태용 감독은 성남, 황선홍 감독은 부산과 포항의 지휘봉을 잡고 K리그에서 여러 차례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클럽무대에서 신 감독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지만 리그 우승이 없고, 황 감독은 리그 우승은 있지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없었다.
 
국가대표팀에서 신 감독은 각급 대표팀을 모두 경험하며 준수한 성적을 올렸고, 월드컵과 올림픽 본선 등 거의 모든 메이저대회를 경험하며 나름의 성과를 올렸지만 우승과는 번번이 인연이 없었다. 황 감독은 23세 이하 대표팀이 첫 대표팀 감독 경력이고 A대표팀에는 지난 3월 임시 감독으로 짧게 경험한 게 전부지만, 대신 신 감독에게 없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타이틀이 있다. 절묘하게 서로가 서로에게는 없는 부분을 가지고 있는 '안티테제'에 가까운 라이벌 관계인 셈이다.
 
황선홍 감독은 8강전을 앞두고 "인도네시아를 쉬운 상대로 여기는 것은 금물"이라며 방심을 경계했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축구에서 한국축구의 위상을 드높였지만, 이제 황선홍 감독의 한국은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을 위하여 신 감독을 격침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4년 전에 신태용 감독을 놓치고 인도네시아로 떠나보낸 대가는, 올림픽 진출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단판승부에서 한국축구에 어떤 나비효과로 돌아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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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황선홍 U23아시안컵 8강전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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