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숙제만 남은 한국 축구, 반성 없으면 '진짜 위기' 올 수도

[주장] 세대 교체·전술 측면 아쉬움 드러내... 이대로라면 러시아 월드컵은 '실패한 대회'다

18.07.16 16:06최종업데이트18.07.16 16:10
원고료로 응원

▲ 한국이 만든 '카잔의 기적'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김영권의 슛이 골로 인정되자 손흥민, 김영권, 장현수 등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축구는 러시아월드컵에서 무엇을 얻었나.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모두 막을 내렸다. 한국축구는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일찌감치 퇴장한 상황이었다.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서 독일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는 등 나름의 성과도 남겼지만 2014 브라질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는 결코 성공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결과다. 월드컵이 완전히 끝난 이 시점에서 이제야말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순간이다.

4년 주기로 열리는 월드컵은 현재 세계 축구계의 위상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무대다. 한국축구는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어느덧 9회 연속 본선무대에 진출한 월드컵 단골손님이 됐다. 하지만 조별리그를 통과한 것은 단 2번뿐일만큼 세계적인 경쟁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특히 2010년대 들어서는 지역예선에서 아시아 무대를 통과하는 것조차 매번 아슬아슬한 턱걸이에 그칠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대 교체와 전술 실패... 러시아 월드컵은 한국에 '실패한 대회'다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정말 어렵게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최종예선에서 성적부진으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하고 신태용 감독을 투입하여 '간신히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자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상대팀들의 어부지리로 따낸 '강제 본선 진출'이라는 조롱과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은 1년 가까이 대표팀을 이끌며 고군분투했지만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는 아직 지도자로서의 경험과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 월드컵 본선까지도 베스트11과 플랜A를 확정하지 못하여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고, 무리한 체력 훈련과 선수단 관리, '트릭 '논란도 있었다. 변칙적인 팀 운영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오히려 우리가 가진 장점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자충수를 범했다. 조별리그 멕시코와 스웨덴전 패배는 명백히 전술적 패착이 불러온 결과였다.

이번 월드컵 최대의 이변으로 꼽히는 독일전 승리는 한국축구에 분명 큰 희망과 자부심을 안겨줬지만 그렇다고 앞선 2경기의 실패, 길게는 지난 1년간 신태용호가 보여준 난맥상을 모두 합리화할 정도의 반전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독일전은 평소의 신태용호와는 다른 전술과 선수구성, 오히려 전통적인 한국축구 스타일로의 회귀라는 변수를 통하여 만들어낸 이변에 가까웠다.

▲ 넘어지는 구자철 지난 6월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 구자철이 세바스티안 라르손과 공을 다투다 넘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신태용호는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뤄내지 못했으며 이전의 대표팀에 비하여 더 성장하거나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유난히 '자기애'가 강해보이는 신태용 감독은 본인의 실수나 결과에 대해서 한번도 제대로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일이 지금까지 없다.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인정하지 않으니 기회가 또 주어져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굳이 이분법으로 나누어야 한다면 신태용호는 성공보다는 실패, 희망보다는 절망 쪽에 더 무게가 쏠리는 게 사실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하여 나타낸 세계축구의 유행은 선수비 후역습의 '실리축구'에 가깝다. 스웨덴-러시아-크로아티아 같은 언더독은 물론이고, 프랑스-벨기에 같은 세계적인 수준의 강팀들조차도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조직적이고 안정된 플레이를 추구하는 '원 팀'으로 성과를 거뒀다. 프랑스나 잉글랜드는 수년간 꾸준한 유소년 육성정책을 바탕으로 과감하고 적극적인 세대교체를 시도하여 황금세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한국축구는 현재 이러한 세계축구와의 흐름에서 동떨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유지해온 네덜란드식 토탈사커에 기반한 압박과 체력이라는 특유의 색깔조차 희미해진 지 오래다. 이미 201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축구에서 쇠퇴의 흐름을 보이고 있는 낡은 점유율 축구에 대한 환상은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통하지 않는 수준이 됐다. 체력과 스피드는 더 이상 한국축구의 장점이 아니며 그렇다고 적극적인 세대교체를 통하여 젊은 선수들을 대거 발굴해낸 것도 아니다. 세계축구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동안, 한국만 '아시아의 강호'이자 '월드컵 단골손님'이라는 과거의 명성에만 안주하고 있었던 셈이다.

월드컵 끝났지만, 한국 축구의 위기는 이제 시작일 수도

물론 한국축구가 지금의 위기에 처한 책임이 오로지 신태용 감독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월드컵 이후 축구협회가 보여준 문제 인식과 대응은 더 실망스러웠다. 신태용 감독은 물론이고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전무 같은 축구협회 수뇌부에 이르기까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지나친 비판 여론에 불만을 내비치기도 하고, 국내에서 대표팀과 월드컵의 인기하락에 대해서는 외부 문제로 책임을 전가하는데 급급해 보였다.

러시아 월드컵의 실패를 온전히 신태용호만의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브라질 대회 이후 지난 4년간 전혀 발전하거나 교훈을 얻지 못한 한국축구 전체의 실패이고, 대표팀만이 아닌 축구협회의 실패이기도 하다. 4년 전 '의리축구' 논란으로 몰락한 홍명보호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때도 눈치보기에만 급급하다가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고 나서야 홍명보 감독과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이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시켰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지난해 10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력 부진에서 촉발된 한국 축구 위기 상황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2017.10.19 ⓒ 연합뉴스


또한 정몽규 회장이 러시아 월드컵 이후 축구협회의 개혁 방안이라고 내놓은 대책들은 4년 전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결국 스스로 4년 동안 본인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제대로 이룬 게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상황 아닌가.

4년 전에 비하여 축구협회의 대응이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나름 실패와 비판에 대한 면역력이 생겨서인지 사과하려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형식적인 사과라도 했던 브라질 대회에 비하여 그나마 이번에는 '독일전 승리'라는 기댈 구석이 있어서일까. 축구협회의 자기 반성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월드컵을 마친 신태용 감독에 대한 평가를 유예하며 그를 버젓이 다른 감독들과 함께 차기 대표팀 사령탑 후보군에 남겨놓은 어정쩡한 대응도 다소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는 축구협회가 지난 월드컵의 결과를 결코 실패라고 인식하고 있지 않으며 스스로는 변화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한국축구의 개혁은 단지 대표팀 감독 한 명 바꾸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월드컵 성적을 비롯하여 약 4년간 한국축구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걸어왔는지, 구조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는지 대한 통렬하고 성역 없는 반성에서 출발하는 것이 우선이다.

결과를 냉정하게 보면 러시아 월드컵은 실패한 대회이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이전 브라질 대회에서부터 누적된 문제점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과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대로 가면 4년 뒤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한국축구는 제자리 걸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그때 가서는 월드컵 본선 진출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한국축구의 진정한 위기는 어쩌면 지금부터인지도 모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러시아월드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