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가 또 한번 추가 시간 드라마를 써내려가며 1위에 등극했다. 5월 4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11라운드에서 포항은 종료 직전에 터진 김종우의 극장골에 힘입어 전북 현대를 1-0으로 격파했다.
 
이날 포항과 전북은 전후반 내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지만 좀처럼 상대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무승부의 기운이 짙어가던 후반 추가시간, 포항의 집중력이 다시 빛을 발했다. 역습 찬스에서 오베르단의 첫 번째 슈팅은 전북 골키퍼 정민기의 선방에 막혔지만, 후반 교체투입된 미드필더 김종우가 재차 쇄도하며 두 번째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끝내 골망을 갈랐다.
 
중앙 미드필더인 김종우는 수원 삼성과 수원FC, 광주FC를 거쳐 2023년부터 포항의 유니폼을 입었다. 첫 해에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는 못했으나 전북과의 FA컵 결승전에서 자신의 포항 데뷔골이자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 우승을 이끌고 대회 MVP까지 차지하는 등 중요한 순간마다 '게임체인저'로 활약했다.
 
올시즌부터 지휘봉을 잡은 박태하 감독은 김종우의 넓은 시야와 완급조절, 세트피스 등 다재다능한 능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포항에서는 수비적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지만 본래는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답게 공격에도 적극 가담한다.

전북전에서도 경기 막판 김동진과의 포지션 스위칭을 통하여 높은 위치에서 역습에 가담한 것이 천금같은 결승골로 이어졌다. 선수의 장점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의 투입과 높은 포지션 자율성을 부여한 박태하 감독의 신뢰가 적중한 대목이다.
 
포항은 이날 승리로 7승 3무 1패, 승점 24점을 기록하며 아직 한 경기를 덜 치른 울산 HD(7승 1무 1패, 승점 23)을 1점차로 제치고 선두에 올라섰다. 지난 3월 1일 울산과의 개막전(0-1) 패배 이후 무려 10경기 연속 무패행진이다.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포항이 올시즌 치른 11경기 중 절반이 넘는 6경기에서 모두 정규시간 90분 이후에 득점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전북전을 포함하여 광주FC(1-0), 제주 유나이티드(2-0), 대전하나시티즌(2-1), FC서울(4-2), 강원FC(4-2)를 상대로 90분 이후 골을 넣었다. 팀 전체 득점 18골 중 무려 7골에 이른다.
 
그리고 극장골이 터진 경기에서 포항은 6전 전승을 거두고 있고 이중 4번이 결승골이었다. 박빙의 승부에서 비기거나 패할 뻔한 경기도 어떻게든 승리로 이끄는 포항의 뒷심을 상징한다.
 
올시즌 개막전만 하더라도 포항이 이 정도로까지 선전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포항은 지난해 FA컵 우승을 이끈 '명장' 김기동 감독이 FC서울로 떠나면서 또다른 구단 레전드 출신인 박태하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박 감독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 중국 연변 푸더 감독 등을 역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K리그 1군 감독 경험은 포항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초반부터 견고한 수비와 롱패스를 통한 역습을 바탕으로 전임감독과는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포항에 입히는데 성공했다. 포항은 올시즌 리그 최소실점(8골)을 기록 중이며, K리그 명장으로 인정받는 전임 김기동 감독과의 더비 맞대결에서도 완승을 거두며 서울 징크스를 깨는데 성공했다.
 
또한 박 감독은 한정된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유스 선수들의 중용과 상대팀에 따른 맞춤형 전술 등 유연한 덕장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호평받고 있다. '감독교체 리스크'로 내심 불안해하던 포항 선수단과 팬들로부터도 이제는 확실한 신뢰를 얻고 있는 모습이다.
 
포항 특유의 '화수분 축구'도 여전하다. 정재희가 지난 시즌의 부상과 부진을 딛고 올시즌 벌서 7골을 터뜨리며 득점 공동선두에 올랐다. 골키퍼 황인재는 전북전을 비롯하여 매경기 엄청난 선방능력을 과시하며 리그 최정상급 수문장으로 올라섰다.

여기에 김동진, 김종우, 이호재 등도 좋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노장 완델손을 제외하고 조르지, 오베르단, 아스프로 등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 기대에 못미치는 상황에서도 국내 선수들의 분전으로 이만큼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마치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2013년을 연상시킨다.
 
포항은 K리그에서 손꼽히는 명문팀이지만 투자 규모나 선수층에 있어서는 중위권 정도로, 현재 울산이나 전북같은 국내 리딩 클럽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은 탄탄한 유스시스템과 효율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꾸준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선수와 외국인을 가리지않고 포항에서 주가를 높이며 빅클럽으로 이적한 선수들도 적지않으며, 감독 역시 세르지오 파리아스-황선홍-김기동 등 성공한 지도자들을 연이어 배출해내고 있다.
 
만일 포항이 없었다면 지난 10여년간 K리그의 순위 경쟁은 특정팀의 독주로 맥빠진 전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포항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전북-울산-서울 등 강팀들을 발목을 잡는 대항마이자, 우승경쟁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극장골로 이변을 만들어낸 경우도 수없이 많다.

올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 팀은 리그 3연패에 도전하는 울산이었다. 하지만 동해안 더비 라이벌이자 지난 시즌 2위팀 포항이 초반부터 끈끈한 모습을 보이며 자칫 싱거워질뻔 했던 K리그 우승 경쟁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전북-서울 등 올시즌 기대를 모았던 강팀들이 여전히 정상궤도를 찾지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항의 선전은 더욱 빛난다.
 
이제 포항은 단순히 순위경쟁의 '페이스메이커' 역할 정도에 만족하는 것을 넘어서 '주연'으로서 더 높은 목표를 꿈꿀만한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남은 경기가 많기는 하지만, 지금의 포항은 2013년 이후 11년 만의 K리그1 우승을 노리는 것도 더 이상 불가능한 도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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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스틸러스 박태하감독 K리그순위 언더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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