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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중국 전역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올림픽 주경기장에서는 수천 명의 중국 관중이 한꺼번에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TV 생중계를 하던 중국 CCTV 아나운서들과 현장 취재기자들도 모두 얼이 빠진 듯했다. 당시 현장 중계를 하던 CCTV의 한 기자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한 채 울먹이기까지 했다. 중국의 '국민영웅' 류샹이 기권한 후 벌어진 풍경들이다.

"류샹 기권, 전 중국이 놀랐다"

오전 11시 50분경, 전 중국인의 눈과 귀는 온통 '새둥지'(올림픽 주경기장)로 모아졌다. '황색 탄환'으로 불리는 중국 육상선수 류샹의 110m 허들 예선전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류샹은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에서 중국 올림픽 사상 최초로 육상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후 중국의 '국민영웅'으로 대접받아 왔다. 류샹의 이날 경기는 모든 중국인들이 이번 올림픽 기간 중 가장 보고싶어 하는 '꿈의 경기'로 꼽혔다.

'하늘을 나는 인간'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던 류샹은 이날 경기에서 올림픽 2년패를 노리며 중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류샹
은 이날 오전 열린 예선전에서 뜻밖의 기권을 해 전 중국을 충격과 탄식에 빠뜨렸다.

올림픽 주경기장에 류샹이 나타나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중국인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장내가 떠나갈 듯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잠시 후 관중들은 멍한 시선으로 깊은 충격에 휩싸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류샹은 스스로 번호판을 떼고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기권을 선언한 것이다. 이날 그는 아킬레스건에 심한 통증을 느낀 나머지 기권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샹의 기권 소식이 알려지면서 중화권 언론과 외신들은 일제히 '류샹 기권, 전 중국이 놀라다'라는 제목으로 이날 충격에 휩싸인 중국내 분위기를 타전했다. 기권소식이 알려진 직후, 중국 인터넷에서는 한 때 '댓글 전쟁'이 벌어졌으며 지금도 인터넷 곳곳에서는 그의 기권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탄자니아 육상선수는 피 흘리면서 달렸는데"

허탈감과 충격에 빠진 중국 누리꾼들은 '류샹의 기권,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인터넷 공간에서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기권소식 바로 직후에는, 흥분한 누리꾼들이 격한 어조로 "13억 중국인의 꿈을 저버린 배신자", "금메달을 못 딸 것 같으니까 일부러 기권쇼를 벌였다" 등등 각종 욕들이 난무했다.

그의 기권에 실망한 한 누리꾼은 중국 포털 검색 사이트 '바이두'의 쪽지댓글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그를 비난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당시,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은 탄자니아 육상선수를 기억하는가. 그는 피를 질질 흘리는 다리를 끌고서 무려 4시간 넘게 달려왔다. 그가 4시간여 만에 마지막 종착선을 넘었을 때는 경기장안에 이미 어둠이 깔린 상태였다. 그가 피 흘리는 다리를 끌고 경기장 안에 들어섰을 때 관중들 전원이 일제히 일어나 감동에 찬 박수를 쳐 주었다. 그 박수는 오랫동안 그칠 줄을 몰랐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의 조국이 이 먼 이역만리 땅으로 나를 보낸 것은 경기를 시작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경기를 끝까지 마치라고 보낸 것이다'라고."

인터넷 곳곳에서 비난과 논쟁들이 봇물을 이루자 각 관련 사이트들에서는 비방·욕설이 담긴 댓글들을 지우기 시작해, 지금 중국 인터넷에서는 그를 동정하고 지지하는 글들만이 대다수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사는 "비록 부상으로 갑작스런 기권을 하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마음속의 영웅으로 남아있다"며 류샹을 둘러싼 중국인들의 충격과 분노를 누그러뜨리려 했다.

한편, 이날 기권 후 그의 책임 코치인 쑨하이핑은 얼굴을 가린 채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리며 비통함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은 18일 오후 현재 37개의 금메달로 종합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8월 18일 이날 하루, 모든 중국인은 쏟아지는 금메달 앞에서도 웃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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