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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아! 너도 빨갱이×이지. 어디 낯짝 좀 보자. 왜 판대기로 얼굴을 가려? 왜, 창피하냐? 당당하게 살아, 이 ×××아. ××× ×."

캬아아....퉤.  

지난 6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이었습니다. 정당해산 심판청구에 항의하며 1인시위 중이던 통합진보당 여성 당원에게 육두문자가 쏟아졌습니다. 배낭을 둘러맨 허름한 차림의 50대 남성은 무슨 원한이라도 품은 것처럼 여성당원에게 입에도 못 담을 살벌한 욕설을 쏟아냈습니다.

일순간 주변의 시선은 그 여성에게 쏠렸고, 그녀는 시위팻말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섬뜩했던 광경이 내내 제 머릿속을 맴돕니다. 다시 대한민국에 빨갱이 사냥이 시작되는 걸까요. 2013년 겨울, 우리는 또다시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쳤던 유신시대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믿고 싶지 않습니다.

국정원에 이어 국군 사이버사령부와 기무사령부, 국가보훈처 등의 선거개입 의혹이 드러나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벌어진 그 무수한 의혹에 대해 함구하면서, 오로지 '반대세력 박멸'에 나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당장에 그 표적이 '통합진보당'인 것은 왜일까요? 이정희 대표가 공개리에 자신의 아버지를 "일본에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라고 토설했기 때문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을 확인할 순 없겠지요.

정치권 안에서는 프레임 전쟁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승리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아니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염두하고, 반대세력을 '종북' 프레임에 묶고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그 안에 가둬 한국사회에서 '분리'하려는 전략을 쓰려는 건 아닌가. 또한 대선 때 내놓았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들이 이행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자 지지층을 묶고 비판세력을 억제할 카드로 '공안' 공세를 취하는 것 아닌가 하는 해석입니다. 

반대진영에선 분노, 비판에 앞서 차라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너무 일찍 패를 까는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임기 말에 최후의 카드로 나올법한 '공안몰이'가 임기 초에 나오니 말입니다. 역사학자인 한홍구 교수는 아버지의 공안통치가 어떠한 후과를 초래했는지 면밀히 살펴볼 것을 권합니다.

"내란음모, 정당해산 심판청구 등 최근 벌어지는 모든 일은 마치 유신 말기에 벌어졌던 현상과 비슷하다. 이런 건 원래 정권 초기에 하는 게 아니라 정권 말기에 하는 건데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일찍 카드를 다 써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박정희 정권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에게 총재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법원이 이를 인용한 1979년 9월 8일, 그러니까 정확히 20일 뒤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에 맞아 최후를 맞게 된다."

특히 한 교수는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과 통합진보당의 강령을 비교해가며 설명했습니다. 단적으로 제헌헌법 제85조와 87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보면 주요산업시설의 국유화 방침까지 나오는데, 그럼 어떤 것이 더 종북인가 헷갈리게 된다는 얘기지요. 차제에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다시 읽기'를 통해 지금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장기전'을 대비하려면 말이지요.

윤여준 전 장관, 아시지요? 대한민국 최고의 책사로 불리는. 탄핵 역풍으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쫄딱 망하게 생겼을 때, 박근혜 당시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아 총선을 진두지휘하며 121석을 따내 최고의 방어를 해냈던 인물.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건 꽤 되었습니다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로 현정국을 진단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가 원래 이런 식일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일찍 시작됐다. 앞으로 옛날 방법 다 쓸 텐데 아무튼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는 것 같다.... 무리수를 둬도 돌파할 수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자신감이 반영된 정국이다. 안보제일주의와 반공주의를 지방선거 전까지 이슈로 끌고가면서 반대세력을 통제하는데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무엇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청구에 대해선 "2% 이상 득표하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소멸하게 돼 있는데 그걸 굳이 해산심판청구까지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유신시절 산업화의 주인공이었던 아버지가 왜 총 맞아 죽었는지 그 의미를 박근혜 대통령은 잘 새겨야 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권력으로 누르고 형벌로 나라를 다스린다고 해봤자 그 최후는 늘 바람직하지 못했음은 이미 옛날 왕조시대 때부터 입증된 바 아니냐는 얘기였습니다.  

이 살벌한 공안통치의 끝, 무엇이 박근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나저나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할 우리네 이웃이 걱정입니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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