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2 20:28최종 업데이트 24.04.2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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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정진석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브리핑에 직접 참석해 미소짓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강펀치들을 연이어 날리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 중대한 외교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격노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한없는 덕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윤 대통령이다.

지난 16일에는 일본 외무성이 <외교청서 2024>를 공개해 강제징용·위안부·독도 등에 대한 공세적 태도를 드러냈다. 외교청서가 아니라 '왜교청서'였나 싶을 정도로 도발적이다. 그런 뒤 금요일인 19일에는 문부과학성이 극우적인 중학교 역사교과서 2종을 교과서 검정에서 추가로 통과시켰다.


21일에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A급 전범과 침략전쟁 전사자들을 제사 지내고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헌납했다. 신도 요시타카 경제재생담당대신은 이곳을 직접 참배했다. 신도 대신은 중의원 의원 때인 2011년 8월 1일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이나다 도모미 중의원 의원 및 사토 마사히사 참의원 의원과 함께 울릉도 방문을 위해 김포공항에 들어왔다가 입국이 거절되자 9시간 농성을 벌인 뒤 돌아간 일이 있다.

차원을 달리하는 일본의 도발... 아베보다 더 노골적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1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하원 회의실에서 열린 의회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지금 일본은 역사문제를 자국민을 결집시키고 군사대국화에 속도를 내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이 더욱 당당해지고 있다는 점은 11일 기시다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과거사에 대한 언급 없이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한다"라며 일본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조했다.

2015년 4월 29일 일본 총리로는 사상 최초로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선 아베 신조는 약간이나마 역사문제를 언급했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의 마음으로 전후를 시작했다", "우리의 행위가 아시아 국가의 국민에게 고통을 주었다" 등의 발언이 그에게서 나왔다. 이로부터 이틀 전인 4월 27일 미일방위협력지침이 개정되고, 28일 미일공동비전성명이 발표됐다. 미일동맹을 업그레이드하고 일본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기회에 아베 신조가 과거 범죄를 '살짝' 언급했던 것이다.

기시다의 이번 방미 역시 미일동맹을 더욱 업그레이드하고 일본의 위상을 더 높이는 기회였다. 친미진영 내에서 한국과 일본의 위상은 더욱 벌어지게 됐다. 일본이 미국과 더불어 미·일·한 안보협력 및 미·일·필리핀 안보협력을 주도하는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선 아베 신조는 이웃나라들을 의식해 살짝 반성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지만, 기시다 후미오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더욱 당당해진 일본의 태도가 그 직후인 16일의 외교청서 공개, 19일의 역사교과서 추가 검정, 21일의 야스쿠니 공물 봉납 및 참배 등에 반영됐다.

이런 도발은 윤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참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는 국민들을 대표해 절제된 분노를 표하고, 한국의 이익을 지킬 책무가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이 사안에서만큼은 평소와 다르다. 무한한 덕장의 모습만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최근 도발은 종전과 차원을 달리한다. 강도가 더욱 세지고 있다. 아베 신조를 떠올릴 만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가 그만큼 강력해서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아베 신조만큼의 리더십이 없어 극우세력의 압력을 조정하지 못한 결과로 봐야 한다. 국내적으로 힘이 없어져 국제적으로 더욱 강해 보이는 게 최근의 기시다 후미오다.

지금의 도발이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은 레이와서적의 역사교과서가 이번에 추가로 검정을 통과한 사실에서도 분명해진다. 19일자 <마이니치신문> 기사 '레이와서적의 역사교과서가 합격'은 "과거 4회에 걸쳐 불합격"됐던 이 교과서가 통과된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 출판사 사장이 "(일본의 아이들이) 일본의 건국 경위를 모른다",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극히 반일색이 강한 부적절한 것이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등의 인식을 갖고 교과서 집필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레이와서적 교과서에 대한 일본 국내의 비판들을 언급하면서, 이 역사교과서의 서두가 인류의 탄생으로 시작하지 않고 성경 창세기처럼 '신들의 일본 창조'로 시작한 점,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의 대응을 '우려먹기'로 표현한 기술" 등을 문제의 예시로 들었다.

문부과학성의 심사는 이 교과서를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결과를 낳는 데 그쳤다. 위안부들이 대가를 받고 일했다며 진실을 왜곡하고 본질을 호도하는 내용이 실린 것은 기본이고, 1905년 을사늑약에 대한 거짓된 기술도 있었다. 외교권을 강탈당한 이 사건에 대해 고종이 만족했을 뿐 아니라 대신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까지 했다는 허위 주장을 담고 있다.

고종이 을사늑약을 반대했다는 점은 당시의 세계적 사건이 증명한다. 그가 1907년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상설·이위종과 호머 헐버트를 보내 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려 한 사건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때문에 고종은 강제 퇴위를 당했다. 이처럼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채 을사늑약이 한국 황제의 동의를 받은 것처럼 레이와서적 교과서는 역사왜곡을 했다.

지난 3월 22일에는 지유사 교과서가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일이 화제가 됐다. 이 교과서도 탈락의 고배를 마신 일이 있다. 이 교과서는 2019년에 탈락한 일이 있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것은 문턱이 그만큼 낮아진 결과다.

지유사 교과서는 그간의 역사왜곡 수준을 뛰어넘었다. 한국의 친일청산을 친일파 인권문제로 규정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우호"라는 황당한 내용을 담았다. 지유사 교과서나 레이와서적 교과서의 검정 통과는 일본의 역사왜곡이 '신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연이어 자극하는 일본... 윤 대통령은 왜 가만히 있나
 

지난 21일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 예대제(例大祭·큰 제사)를 맞아 '내각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명의로 봉납된 '마사카키'라고 불리는 공물의 모습. 마사카키는 신사 제단의 좌우에 세우는 나무의 일종이다. ⓒ 교도통신=연합뉴스


기시다 내각은 11일에 당당한 미 의회 연설을 하고 16일에 외교청서를 공개하고 19일에 레이와서적 교과서를 통과시키고 21일에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한일 역사문제와 관련된 강펀치들을 4·10총선 직후부터 불과 며칠 간격으로 연이어 날렸다.

그런 강펀치들 중간에 한일 정상의 전화 통화가 있었다. 17일 저녁 기시다는 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파트너로서 한국과의 협력을 계속 심화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한미일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역내 평화와 번영에 기여해 나가자"고 화답했다.

17일 자 <마이니치신문> 등을 종합하면, 기시다가 전화를 건 목적은 미국 방문 결과를 설명하는 한편, 4·10 총선 패배로 한일관계가 흔들리지 않게 단속하는 데 있다. 일본이 원하는 한일관계 진전이 총선 참패로 동요하지 않게 하려는 의중이 있었던 것이다.

총선 참패로 한일관계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총선 직후부터 한국에 연달아 강펀치를 날렸다. 그런 와중에 기시다가 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파트너'임을 환기시켰다. 때리고 약 발라주는 장면을 연상케 된다. 일련의 펀치가 한국을 강타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마음을 붙들어두려는 의도 역시 그 전화 통화에 담겼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이 총선 직후부터 역사도발을 강화하는 현상에 대해 윤 대통령이 우려를 갖고 있었다면, 17일 전화통화에서 어떤 형태로든 의사 표시가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대통령실 보도자료에 따르면, 15분간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한일 간 긴밀한 협력', '한일 간 긴밀한 공조', '정상 간 격의 없는 소통의 발전'을 거듭거듭 강조했다. 기시다가 전화를 걸어 마음을 다독여줄 필요조차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일본이 한국을 연이어 자극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이에 대응해야 마땅하다. 개인적으로는 별 일 아닌 것 같더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은 한국 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해야 한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별 반응이 없다. 역사 문제에서도 '러브샷' 중인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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