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1 10:57최종 업데이트 24.05.0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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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만보는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의 줄임말입니다. [편집자말]
 
"서른 여섯에 남편과 헤어지고 거제로 내려왔어요. 결혼 전 사무보조 업무를 했던 게 전부였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막막했어요." - 정인숙

"남편이 하던 알루미늄 사업이 부도가 났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죠. 그런데 나쁜 일은 같이 온다고 남편 때문에 가정이 깨져버렸어요." - 나윤옥
 
거제시에서 한화오션 조선소를 다니는 정인숙과 나윤옥은 묘하게도 둘 다 이혼의 아픔을 겪은 여성노동자다. 살림만 했던 정인숙은 기술도 경험도 돈도 없는 처지, 앞날이 캄캄했다. 아들 둘과 딸은 남편이 키우기로 했으나 그는 자기 밥술조차 만들 능력이 없었다. 이혼 후 3개월 동안 방구석만 바라보던 정인숙을 거제에 있는 오빠가 불렀다. "여기가 니 고향이고 조선소에서 노력하면 밥은 먹을 수 있다"며 '도장공'으로 밀어 넣었다. 2010년 6월 15일, 그날로 정인숙은 대우조선 도장부의 사내하청인 '한성'의 노동자가 되었다.


나윤옥은 조금 다르다. 이혼하고서 그는 인천의 핸드폰 부품공장에서 품질검사를 했는데 수입은 들쭉날쭉이었다. 한 달을 꼬박 일하면 최저임금은 받지만 일이 없는 달은 100만 원 벌기도 힘들었다. 나윤옥은 2013년 두 딸과 함께 거제에 있는 친구에게 놀러왔다가 대우조선에 마음을 뺏겼다. 이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면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갖고 문을 두드렸다. 그를 받아준 곳은 대우의 하청업체 '거광'이라는 곳이었다.

두 사람이 거제에 내려왔을 때 "지나가는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조선업은 호황이었다. 장밋빛 꿈을 안고 들어간 거제대로 3370에 있는 대우조선소. 기대와 달리 하루 종일 쇠를 깎고 바닷바람에 맞서고 뜨거운 태양을 견뎌야 하는 사납고 험한 곳이었다.

거친 바닷가에 서서

정인숙은 입사해 롤러를 잡았다. 그의 말대로 도장은 배 만드는 작업의 마지막이며 꽃이다. LNG선이건 곡물운반선이건 용접으로 이어붙인 울퉁불퉁한 겉모양을 맵시 있게 꾸미는 건 도장만이 할 수 있다. 철판이 녹 쓰는 걸 막기 위해서도 도장은 꼭 필요한 작업이다. 지난 13년 동안 그의 손을 거쳐 옥포항에서 큰 바다로 나간 배가 무려 50척, 하지만 도장작업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 하루하루가 전투다. 
 

작업현장에 선 정인숙 옆에 들고 있는 것이 작업용구. 페인트와 롤러,붓,끌 등이 담겨있다. ⓒ 정인숙제공

 
정인숙은 출근해 작업지시를 받으면 안전모에 안전화, 안전띠를 메고 보안경과 방진마스크를 낀다. 과일박스 크기 작업통에 페인트와 롤러·붓·헤라들을 넣고 이를 움켜쥔 채 현장으로 간다. 내 몸 하나도 무거운데 10kg이 넘는 작업용구는 유격훈련 때 병사들이 메는 군장에 버금간다.

전처리를 끝내고 스프레이가 뿌려진 곳을 덧칠해 도장막을 두텁게 하는 일이 그의 업무. 정인숙의 롤러와 붓은 엔진룸이나 선체 등 안 가본 곳이 없지만 제일 어려운 곳은 역시 탱크안이다. 저장소 노릇을 하는 탱크는 종류에 따라 높이가 10층, 15층 다양하다. 이런 곳을 팔꿈치에 작업통을 낀 채 수직 사다리로 오르내려야 한다. 처음엔 어질어질했다. 자칫 헛디디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언제나 신경이 곤두선다.

탱크 안에서 도장작업을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환기. 배의 옆면을 칠할 때는 발판을 딛고서 위에서부터 내려온다.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냄새도 가셔준다. 그런데 탱크 안은 도무지 답이 없다. LPG선은 카고탱크라고 탱크 안에 탱크를 집어넣어 환풍기를 틀고 공기를 빨아대도 어지간해서는 바깥 공기와 순환이 되지 않는다. 열명 안팎의 반원이 한꺼번에 작업을 시작하면 탱크 안은 금세 신나 냄새로 가득 찬다. 이때 종종 신나에 취한다. 이미 작업한 곳을 되풀이해 칠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갈짓자 걸음이 되어 구석으로 파고든다.

정인숙도 취한 나머지 배관 파이프에 누워서 한 곳만을 칠한 경우가 여러 번이다. "나는 안 취했어 안 취했어" 하면서 엉덩이를 흔들고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귀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상여 소리가 들린다고도 한다. 이때 두통이 같이 오면 고통이 몇 곱절이 되고 입에는 신나 냄새까지 나 밥을 넘기기도 힘들다.

정인숙에게 신나 냄새만 적군이 아니다. 작업복 위에 페인트 방울이 스며들지 못하게 녹색 피스복을 껴입고 면장갑 위에 빨간 코팅 장갑을 끼지만 스프레이를 뿌리다 보면 페인트 액이 살갗에 닿기 마련이다.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땀을 훔치노라 얼굴과 목에도 페인트가 묻는다. 그럴 때마다 불에 덴 듯 살점이 벌겋게 일어나고 밤이면 가려워 잠을 잘 수가 없다. 정인숙의 손등과 팔목 언저리는 온통 붉은 반점투성이다. 신나가 만든 상처고 조선소밥 15년이 정인숙에게 준 훈장이다.
 

ⓒ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나윤옥도 처음에는 도장으로 조선소 일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롤러를 미는 게 어디 쉬운가? 배관이 복잡해 롤러가 미치지 못하는 곳은 1인치, 2인치 다양한 크기의 붓으로 덧칠을 해 막을 입힌다. 쪼그려 팔을 뻗고 때로는 비틀거나 누운 채로 하다 보니 3개월 만에 몸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특히 손목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탈이 났다. 번 돈을 병원비로 털어먹고 다시 시작한 업무가 '발판 하부감시'. 용접과 도장 전기와 배관, 이 모든 업무가 발판 위에서 이뤄지니 밑으로 용접불똥이나 쇳조각, 여러 자재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밑을 지나가는 노동자가 다칠 위험이 크기에 하부감시가 필요하다. 나윤옥은 그날그날 발판길을 따라서 사각콘을 늘어놓는다. 위험구역을 지나지 못하도록 줄을 치고 이를 못 보면 호루라기를 분다. 돌아가기 싫다고 나윤옥의 제지를 무시하는 다른 부서 반장과 몸싸움도 했다.

하부감시만 하면 좋으련만 오지랖 넓은 나윤옥은 발판을 설치할 때 필요한 자재를 날라주는 데모도 노릇까지 했다. 발판·사다리·사다리지지대와 덮개·파이프, 거기에 낙하방지용보드 등 50가지가 넘는 물품을 옮겨주다 지금은 아예 발판 설치와 해체작업 노동자로 나섰다.

발판의 길이는 가장 긴 놈이 4.5m, 무게만 24kg이다. 여기에 브라켙과 클램프가 얽어매지고 작업하며 떨어진 페인트에 흙먼지와 쇳가루가 쌓이면 이래저래 무게가 늘어난다. 용접이 끝나면 배관과 전기, 그리고 다시 도장작업이 이어지니 설치와 해체는 끝없이 반복된다. 하루 500개 이상 발판을 옮긴 날도 있다. 그러니 허리와 무릎, 어깨가 성할 날이 없다. 나윤옥 그만이 아니라 발판팀 대부분이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거창한 병을 안고 산다. 10만 개나 되는 철판을 이어붙여야 배 한 척이 완성된다. 몸뚱아리는 아우성쳐도 나윤옥은 이 '위대한' 작업을 위해 매일매일 하늘길을 만들었다. 
 

발판 노동자 나윤옥 그는 10여 년째 거제에 있는 조선소에서 발판설치와 해체, 하부감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 민병래

 
화장실의 애로는 말도 못해요

현장에서 정인숙과 나윤옥 두 노동자가 겪는 고통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화장실. 오전 오후 한 번씩 쉬는 시간에만 화장실을 갈 수 있는데 배 끝에서 배 끝까지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있고 탱크 안에서 작업할 때는 수직 사다리를 올라가야 한다. 화장실에 도착해도 긴 꼬리가 늘어서 있다. 하부감시·화기감시·데모도 등 여성노동자가 많이 늘었는데 여전히 남자가 세 칸이면 여자는 한 칸 이런 식이다. 나름 청소노동자가 애를 쓰나 간이화장실이니 가스가 역하게 올라오고 담배꽁초와 가래까지 있으면 화장실에 앉아있는 게 곤욕이다.

대우조선 시절부터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여성노동자가 용변을 보고 있는데 크레인이 느닷없이 화장실을 들어 올렸다. 간이화장실은 크레인으로 떠 다른 곳으로 옮겨 대소변을 버리고 청소를 한다. 이날은 안내가 잘못되었는지 한 여성노동자가 이동 사실을 모른 채 화장실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웃으면서 하는 얘기지만 당사자는 참으로 끔찍했을 터이다. 이러니 휴식시간 10분에 제대로 용변조차 볼 수 없어 참다가 방광염에 걸린 사람도 있다. 소변은 어찌어찌 참아도 생리 처리는 참을 수가 없으니 이런 날 여성 노동자는 몇 배로 힘겹다. 민주노총 지도위원이었던 김진숙이 1981년 여성용접사로 대한조선공사에 들어가 겪었던 애로가 고리짝 전설이 아니라 '아직도'인 셈이다.

나윤옥은 화장실 만이 아니라 샤워도 큰 문제라고 하소연을 한다. 조선소현장은 5월만 되어도 한낮의 열기가 맹렬하다. 작업복을 입고 안전화 끈을 조이고 안전모에 안전띠를 차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다. 여기에 땡볕을 뒤집어쓰면 금세 몸이 벌겋게 익어 오전 근무만 마쳐도 온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거기에 떠다니는 쇳가루와 기름 덩어리까지 달라붙으면 퇴근 무렵 몸에서는 쉰내가 그득하다. 그런데 최근 여성노동자가 크게 늘어 퇴근 후 샤워장에 가면 꼭지 앞에 긴 줄을 서야 한다. 지친 몸을 따뜻한 물로 씻는 게 자그만 행복이었는데 이조차 힘들어지니 답답한 노릇이다.

밥심으로 일해야 하는 정인숙과 나윤옥, 점심시간이 기다려지지 않겠는가. 행복해야 할 밥 시간이건만 이마저 뒷걸음치고 있다. 한화오션현장은 끝에서 끝까지 가는데 자전거로도 30분이나 걸릴 정도로 넓은 곳이다. 사내 식당이 스물여섯 개가 있으나 그날 작업 위치에 따라 식당에 가는 데만 5분 이상이 걸릴 때도 있다. 짧은 시간에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빈자리를 찾기가 어렵고 그저 목구멍에 퍼 넣기가 바쁘다. 5분 만에 끝냈다고 3분 만에 쑤셔넣었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현실이다.

메뉴도 문제다. 식당 노동자가 나름 애쓰고 있으나 정인숙과 나윤옥은 점점 더 먹을 게 없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한화오션 현장에만 이주노동자가 2023년 8월 기준 2200명이 넘었다. 아무래도 식단을 짤 때 이들의 입맛을 챙겨야 하니 한국인 노동자 입장에선 차림표가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한편 이주노동자는 이주노동자대로 애로가 크다. 한국의 매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다가 오직 쌀밥만 먹는 노동자도 있으니 말이다.

- 2편 <신분은 위태롭고, 일터는 불안... 두 여성이 찾은 곳 https://omn.kr/28icj>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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