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15일 저녁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만찬'에서 '6.15 10주년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미래'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15일 저녁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만찬'에서 '6.15 10주년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미래'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그는 황혼 무렵, 즉 세상이 어둠에 휩싸이고 시대가 저물 때야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 아직 '역사'를 모를 때는 남들처럼 침묵과 보신에 급급했을지 모르지만 1970~80년대의 가혹한 '역사 현실'을 겪으면서는 달라졌다. 지식인, 특히 사학도의 길이 무엇인지를 체득하고 나서는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월간 <사회평론>과 계간 <통일시론>의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측면에서 보면 이는 '업혀서' 수행한 일이기도 했다. 이제 역사학의 현재성과 대중성을 한층 더 확립하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또한 가상대학의 강의나 단행본 출간으로는 새 세기이자 매스 미디어의 시대로 접어든 시기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000년 봄에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를 창간했다. 자신이 직접 출자하고 발행·편집을 맡았다. 편집위원으로 김영하, 오종록, 신용효, 변은진을, 편집간사로 김윤희를 위촉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시를 내걸었다.

역사는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학문이 아닙니다. 역사는 그저 먼 옛날이야기도 아닙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를 역사가 그저 학문, 그저 옛이야기가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의 삶을 이끌어 내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힘임을 보여 주기 위해 창간되었습니다.

좀 더 쉽게 그리고 오늘을 사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역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잡지로 거듭나겠습니다.

출판은 도서출판 신서원이 맡았다. 강만길은 창간사에서 지난날 역사학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재성과 대중성이 있고, 그 위에 발전적 역사인식이 깃들일 수 있는 역사 대중잡지를 만들기로 했다"라고 잡지의 창간 동기를 밝혔다. 그의 생애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잡지이므로, 이를 천명하는 '창간사' 전문을 소개한다.

<내일을 여는 역사>를 내며

1970년대는 박정희정권의 이른바 유신체제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경제개발을 내세우면서 정치·사회·문화면 전체에 걸쳐 엄청난 반역사적 시책이 자행되고, 종신집권이 전망되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을 막으려는 쪽의 힘은 약하기만 했다. 괴뢰 민주국 장교 출신을 정점으로 하는 박정권이 유신 폭정을 호도하기 위해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감히 민족주체성 운운하면서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했으나, 역사학계에서는 반대성명 하나 나오지 않았다. - 이때 국정화된 국사 교과서는 30년이 된, 그리고 민간정부가 두 번째 들어선 지금까지도 국정화인 채로 있다. -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무관심한 역사학계가 유신체제의 반역사성에 관심을 가질 리 없었고, 적극적으로 비판하거나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리 없었다. 역사학계가 이같은데 반유신운동이 쉽게 대중운동으로 확산될 리 없었다.

대학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역사학계가 이렇게 현실 문제에 무관심한 채 과거사에만 안주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 강점시대의 우리 역사학 방법론이 민족의 현실적 고통을 외면한 채 오로지 과거사의 천착에만 안주한 사실이 그 학문적 현재성을 상실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라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해방 후 우리 시대의 역사학이 현재성을 회복하고 대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족분단 극복의식이 학문에 투영되어야 하며 또 분단문제 자체가 역사학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일정하게 개인적인 노력을 해 왔고 나름대로 몇 권의 책도 썼지만 영향력이 너무도 미약함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대학에 적을 두고 있을 때는 그 이상 더 적극적인 방법을 강구하기 어렵다고 스스로 변명해 왔다. 그러나 이제 대학에서 물러남으로써 변명의 여지조차 없어졌으니 어떤 일이든 시도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생각 끝에 현재성과 대중성이 있고 그 위에 발전적 역사인식이 깃들일 수 있는 역사 대중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 지금은 현재성과 대중성을 갖춘 학문경향을 가진 젊은 연구자들이 상당히 배출되었다고 생각되어 그들과 함께 노력해 보려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처럼 중·고등학교에서 국정교과서만으로 우리 역사가 가르쳐져서는 안 된다.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양해져야 그 민족사회를 이끄는 힘이 커진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내일을 여는 역사>를 발행하는 취지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우리가 강조해 온 역사학의 현재성과 대중성이 갖추어져서 역사 보는 눈이 다양해지기 바라며, 둘째 그 위에 지금까지의 남북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남북화해를 지향하는 역사인식을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우선 중·고등학교에서 역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우리 역사를 좀 더 객관적인 처지에서 보려는 지식인 일반에게 읽혀졌으면 한다.

우리의 출발은 비록 엉성하고 미약하지만 이 땅의 역사교육에 의미 있는 하나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런 일을 맡아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많지 않은 세상인데도 짧은 기간이나마 역사학을 가르치고 배운 인연으로 흔쾌히 출판을 맡아 준 신서원의 임성렬 사장에게 감사하고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애쓰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감사한다.

2000년 3월 여사서실(黎史書室)에서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강만길평전, #강만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21세기의 서론'을 쓰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