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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당근!"

쉴 새 없이 울리는 엄마의 핸드폰 알람. 엄마는 중고거래 마니아다. 친정집에 오랜만에 갔는데 그새 못 보던 물건들이 또 생겼다.

"이거 한번 입어 봐!"

옷을 한 보따리 내놓으시며 자랑을 하신다. 당연히 당근 제품들이다. 속으로는 정말 싫었는데 내색을 할 수 없었다. 나를 생각해서 눈 빠지라고 검색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입어보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몰래몰래 새 물건을 사들이는 나와 있는 물건 당근에 팔고 중고 물건 사오는 우리 엄마. 나는 내 돈도 마음대로 못 쓴다. 뭔가 가구나 전자제품을 살 때마다 돈을 못 쓰는 엄마가 마음에 걸려서.

엄마는 가난하지 않다. 나보다 훨씬 훨씬 부자다. 그런데 나보다 돈을 안 쓰신다. 아니 못 쓴다. 나는 그것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 속옷은 구멍이 난 것도 있고 화장품도 유통기한 지난 것들이 많다.
 
아빠가 농사 지으신 고구마. 중고거래 앱에 올려둔 사진.
 아빠가 농사 지으신 고구마. 중고거래 앱에 올려둔 사진.
ⓒ 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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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괜찮은 소파가 무료 나눔으로 나왔는데 가지러 가자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지친 아빠가 싸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아빠가 농사 지으신 들깨, 고구마, 단호박 등도 당근에서 거래하시곤 굉장히 뿌듯해 하며 전화로 자랑하곤 하신다. 그런데 나한테만은 무료 나눔이다. 중고거래 앱에 물건을 올리기 위해 사진도 여러 각도와 방향에서 찍고 아무튼 정말 바쁘게 하루를 사신다.

처음에는 그런 엄마가 불쌍했다. 아빠는 친구들과 외식도 자주 하고 놀러도 많이 다닌다. 그런데 엄마는 집만 지키고 계신다. 더군다나 할머니까지 모시고 어디 한번 마음대로 여행도 가실 수 없는 상황까지 돼버렸다.

할머니가 요양원에도 안 가고 엄마 집에서 돌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와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자식들에게 "난 너희에게 절대 손 안 벌려. 돈 많이 모아 뒀다가 요양원에서 보낼 거야" 하신다. 그 말이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그러다 불쌍한 마음이 점점 짜증과 화남으로 변할 때도 있다. 엄마는 아끼는 생활습관을 나한테까지 강요하시고 내 집에 늘어가는 가구며 생필품도 마음에 안 들어 하시기 때문이다. 당근에서도 멀쩡한 걸 살 수 있는데 왜 꼭 새 상품을 고집하느냐며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하고 구매하라고 한다. 어떨 때는 내게 묻지도 않고 당근에서 구매하고 배송까지 해주신다. 정말 싫다.

솔직히 부모님이 못 살지 않고 아직 경제생활도 하시고 간간이 보태주기까지 하시니 정말 든든할 때가 많다. 딸내미가 돈 쓰는 거에 아직도 하나하나 간섭이긴 하지만 다 날 걱정해서 하는 쓴소리라 생각한다. 반박하지 말고 듣고 있기라도 해야 한다.

어린이날이며 손녀딸 생일, 딸 생일, 사위 생일이면 용돈을 꼬박꼬박 보내주시면서 내가 정작 어버이날 용돈이나 생신 선물을 사보내면 노발대발 하신다. 액수가 적어서 화가 나신 것인지 정말로 싫어서 화가 난 건지 도통 알 수 없다.

"누가 너더러 돈 보내래? 다시 네 계좌로 돈 보낼 거야. 그냥 너 잘 살기만 해. 앞으로 절대 이런 거 보내지마!"

엄마가 돈 좀 쓰고 사셨으면 좋겠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운동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사드시며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길 바란다. 그러면 못 보태드리고 더 사주지 못하는 내 마음의 짐이 한결 덜어질 것 같다.

며칠 전 집에 오실 때 한가득 뭔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오셨다. 지난번엔 다 못 먹는 거 싸 왔다고 싫은 내색 했다가 엄마가 잔뜩 실망한 표정과 목소리로 다시 가방에 팍팍 집어넣으며 화내신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어떻게든 냉장고에 집어넣으며 두고두고 먹을 거라고 감사하다고 했다. 엄마는 굉장히 만족해하고 뿌듯한 표정이셨다.

엄마 핸드폰에서 언제쯤 당근 소리가 나지 않을까. 내가 엄마보다 부자가 되면 그치려나. 아마도 앞으로 몇 년간은 중고거래 앱 알람은 계속될 것 같다.

태그:#어버이날, #중고거래, #절약, #엄마,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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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소소한 일을 기록해놨다가 꽃처럼 펼쳐보이고 싶은 그런 여자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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