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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 한길사 대표.
 김언호 한길사 대표.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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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제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책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

48년 동안 책 3500여권을 펴낸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독자들을 만나 한 첫 마디다. 김 대표는 9일 저녁 진주문고(대표 여태훈) 초청으로 '책과 책방에 관한 50년 출판인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대표는 자신이 펴낸 책 <세계 서점 기행>, <책의 공화국에서-내가 만난 시대의 현인들, 책 만들기 희망 만들기>를 소개하면서 출판, 책방(서점), 독서를 강조했다.

"펴낸 3500여권 가운데 어떤 책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큰 아이가 이쁘냐 작은 아이가 이쁘냐는 물음과 같다. 많이 팔린 책이 있어 잘 안 팔리는 책을 만들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함석헌(1901~1989년) 선생의 글이 가장 생각이 난다고 했다.

1975년 신문사에서 해직되고 그 이듬해 출판사를 차렸던 그는 "<동아일보>에서 125명이 해직되었고 그때 현대건설 홍보실에 취직하려고 했다. 정주영 회장은 좋다고 했는데 당시 사장이던 이명박씨가 '제꼈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책의 공화국에서>를 언급하면서 "1980년대 박종철‧이한열군의 죽음을 보면서 매일 일기를 썼다"며 "책과 역사, 사람의 살림살이가 연계되어 있다. 중요하기에 매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만났던 윤이상, 함석헌, 신영복, 이오덕, 리영희, 박현채 등 16명의 '시대의 현인들'에 대한 기록을 해두었다가 책으로 펴냈다. 그는 "이 분들은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살아 계시지 않지만 그분들의 육성이 지금도 들려오는 것 같다. 그분들의 육성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책을 썼다"라고 소개했다.

윤이상 선생 자료 가져 오다 공항에서 빼앗겨

윤이상 선생 인터뷰와 관련한 일화를 꺼낸 김 대표는 "한국을 떠난 지 35년이 지났는데 우리 말을 잘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대화에는 문제가 없었다"라며 "윤이상 선생은 '내 음악은 내 것이 아니다. 서양 사람들은 작곡가가 누구냐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고 음악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옛날에 누가 작곡했는지가 없다. 하늘이 준 소리를 내 귀를 받아서 악보에 적었을 뿐이다고 하더라.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윤이상 선생 관련 자료를 가지고 오다가 김포공항에서 빼앗겨 책을 내지 못했다"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국민들의 책 읽기를 강조하면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책을 읽는 게 중요하지 않고 우리 국민, 특히 젊은이들이 좋은 책을 많이 읽고 토론하도록 뒷받침 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라며 "정치인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서 자기 혼자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사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독서를 해야 하고, 그래서 도서관을 잘 만들어 주어야 한다. 책방도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서점을 소개한 김 대표는 "책방이 중요하다. 우리가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려면 자격이 있어야 하듯이 독일은 서점에 종사하려면 서점학교를 나와야 한다"라며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는 수백년 된 서점이 많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책은 한 시대의 반듯한 정신과 사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한국 교육은 너무 잘못 돼 가고 있다. 매년 10월, 11월이 되면 대입수학능력시험 치르기 위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다른 책은 못 읽게 하고 오직 수능에만 매달려야 한다"라며 "서기 2000년이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자. 유럽 여러 나라는 책과 문화예술을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폭죽을 터뜨렸다"라고 말했다.

"새천년 때 유럽은 책-예술, 우리는 폭죽"

"새천년(뉴밀레니엄) 때 프랑스는 인문학 강좌를 매일 했다. 역시 인문의 나라다. 영국은 로타리클럽에서 기획해 '고전을 다시 읽자'며 중고등학교에 책을 기증했다.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해, 금속활자가 나와 누구나 책을 보편적으로 만들고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라고 하더라.

파리에서 한국 출신의 음악작곡가와 딸을 만났던 적이 있다. 딸한테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었더니 서양 고전을 읽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대단하다고 했더니 그 아이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 읽는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뉴밀레니엄 때 폭죽만 터뜨렸던 것 같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9일 저녁 진주문고에서 강연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9일 저녁 진주문고에서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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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김 대표는 "교육은 아이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고 운동하는 것이다"라며 "어느 나라든 교육부는 학생들이 책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는 것 같다"라고 했다.

"우리는 교육부, 문화부 장관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한때 문화부 장관이 이 책을 읽으라 저 책을 읽지 말라고 했다. 80년대는 책을 만들었다고, 번역했다고, 읽었다고 잡아갔다. 책은 누구나 읽게 하고 스스로 극복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었다고 해서 문제 삼을 수 없지 않느냐. 과거 문화부 장관이 서점에 가서 '민중'이라는 글자가 적힌 책이 왜 많이 꽂혀 있느냐고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책 <해방 전후사의 인식>,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거론한 김 대표는 "책이 많이 팔렸고 빌려서 읽은 사람도 많았다. <해전사>를 보고 역사에 눈을 떴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였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 말을 반듯하게 쓰는 책을 만들어야 하고, 우리 역사를 반듯하게 기술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그래서 한길사에서 역사 관련 책을 많이 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내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 관련 책도 냈다. 그것은 신라‧백제‧고구려가 싸우는데 신라만 좋다고 해서 고구려를 소홀하게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했다.

"중국에는 24시간 운영하는 서점도 있다"

김 대표는 책 읽기를 강조했다. 그는 "독서운동은 크게 보면 도서관과 책방이 중요하다. 새 책을 공급하는 공간이 책방이고 도서관은 오래된 책을 보관했다가 빌려주는 곳이다. 독일은 책방을 중시한다. 우리도 책방을 지원해주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중국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는다. 서점에 가면 바구니를 들고 책을 여러 권 사기도 한다. 중국에는 24시간 운영하는 서점도 있고, 그런 서점을 정부에서 지원해준다. 그런데 우리는 서점에서 책 한 권 사는 걸 갖고 벌벌 떨기도 한다. 책방은 너무나 중요한 교육의 장이다"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나온 사람들이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도 10년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정말로 바보가 된다. 책은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보편적인 질서다. 책을 읽으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사유를 많이 하면 치매 방어기저가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책읽기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 사회를 일으키는 역량이 책을 읽기에서 가능한 것이다."
 

<세계 서점 기행>은 중국어, 일본어판으로 번역되어 이미 나왔고 곧 러시아어판도 나온다. 김 대표는 "가을에 러시아어판이 나온다. 그런데 세금이 20%라고 한다. 다른 나라는 5~10% 정도인데 러시아도 이전에는 그렇게 했지만 지금 정부 들어서서 사이가 나빠져 세금을 더 물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웃 나라와 잘 살아야 우리가 좋다"라며 "익숙하지 않은 글자인 러시아어로 나올 책이 기대된다. 이처럼 책은 모든 인류 사회를 소통시키고 질을 끌어 올린다"라고 말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9일 저녁 진주문고에서 강연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9일 저녁 진주문고에서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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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길사, #김언호, #책, #진주문고,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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