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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를 고쳐 쓰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 23] 강만길이 현대사를 고쳐 쓰면서 아쉬웠던 점

등록 2024.04.28 12:34수정 2024.04.2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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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은 25일 밤 한국인터넷언론포럼 간담회에서 "광복 60주년이 되도록 친일반민족행위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치욕적인 일"이라고 일갈했다.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은 25일 밤 한국인터넷언론포럼 간담회에서 "광복 60주년이 되도록 친일반민족행위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치욕적인 일"이라고 일갈했다. ⓒ 시민의신문 양계탁

 
순수한 학자의 길은 끝이 없는 사막을 모래바람을 맞으며 걷는 고행길이다. 어쩌다 오아시스를 발견하지만 고행은 계속되고, 가끔 길손을 만나기도 하지만 여정의 대부분은 홀로 걷는다. 198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 사이에 국내외의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소련 등 동구 사회주의권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1994년 초에 그는 민족해방운동사와 좌익세력의 활동을 대폭 강화하여 <고쳐 쓴 한국근대사>와 <고쳐 쓴 한국현대사>(창작과비평사)를 펴냈다. 그동안 수정 작업을 계속하여 결실을 본 것이다. 두 책은 출간 이후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고쳐 쓴 한국근대사>는 특히 문호개방 전후의 사회경제사 부분에서 지난 10년간 남한 역사학계에서 생산된 업적은 물론이고 전에는 이용하기 어려웠던 북한 학계의 성과를 수용했다. 또 <고쳐 쓴 한국현대사>에서는 특히 일제 식민지 시대 민족해방운동사를 1930년대 이후를 대폭 강화하면서 전면적으로 다시 썼다. 그리고 8·15 이후를 대폭 강화하면서 전면적으로 다시 썼다. 그리고 8·15 이후 이 부분에도 통일 민족국가 수립운동과 1980년대의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기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부분을 추가했다. (주석 1)

'고쳐 쓴' 두 권의 저서는 그의 학자적 성실성이 돋보이는 결과물이다. 급변하는 정세에서 더 새로움을 찾는 것이 일반적인 터에, 시중에서 인기 있는 책을 대폭 수정·가필하는 정성은 '대범하면서도 진지한' 성품의 한 단면을 잘 보여 준다.

변화에 따라 우리 근현대사가 다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가 그 자체로는 어두웠던 한 시기의 역사책으로서 제구실을 어느 정도 한 것에 만족하고, 또 1980년대 이후 엄청나게 생산된 연구업적을 수용하기도 벅차서 고쳐 쓰기를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의 연구업적과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의 '역사를 보는 눈'은 아직도 생명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당시는 특수한 관점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에는 보편적인 관점으로 되어가고 있다. 특히 1980년대 후반기 이후의 세계사적·민족사적 변화에 따라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를 쓸 때 세워진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관점과 방향이 오히려 더 강조되고 있기도 하다. 결국 1980년대 이후의 연구업적을 나름대로 소화하면서 고쳐 쓰기로 했다. (주석 2)

그는 2018년에 이 책을 '강만길 저작집 02'로 다시 간행하면서 <저작집 간행에 부쳐>에서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일제시대의 민족해방운동사가 남녘은 우익 중심 운동사로, 북녘은 좌익 운동 중심사로 된 것을 극복하고 늦게나마 좌우합작운동이 민족해방운동사였음을 밝힌 연구서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자윗거리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실 민족해방운동에는 좌익전선도 있고 우익전선도 있었지만, 해방과 함께 분단시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해방운동의 좌우익전선은 해방이 전망되면 될수록 합작하게 된 것이다. (주석 3)

그는 한국 근대사와 한국 현대사를 고쳐 쓰면서, 그리고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을 집필하면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쏟았다. 이들은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하고도 '극우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제대로 평가받거나 연구되지 않았다.

연구는커녕 오히려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전까지는 그 업적을 높이 평가받던 홍범도 장군도 윤석열 정부 들어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설치된 흉상 철거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명예가 훼손당하고 있다. 두 사람은 우리 독립운동사의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독립운동 투사이다.

강만길은 우리나라 현대사를 고쳐 쓰면서 아쉬웠던 점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한국현대사>를 쓸 때에 비하면 우리 현대사에 '북한사'를 넣을 수 있는 학문 내외적 조건이 조금은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고쳐 쓴 한국현대사에서도 '북한사'를 넣지 않고 '남한사'만으로 서술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지금 일부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과 같이 8.15 이후의 우리 민족사를 남한사를 중심으로 하고 북한사를 일부 덧붙이는 방법이나 남한사 따로 쓰고 북한사 따로 써서 하나의 책으로 묶는 방법이 옳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8.15 이후 남북지역의 역사적 전개가 각각 고유한 역사성을 가진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서 남북의 8.15 이후사를 둘이 아닌 하나의 역사로 용해시켜 대등한 위치와 같은 분량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은 학문 내외적으로 그렇게 쓸 수 있는 조건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또 그런 역사인식에서 8.15 이후의 우리 역사를 볼 때 하나로 된 남북의 역사를 '한국현대사'로 이름 짓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주석 4)

김명구 교수는 해제 <강만길 한국현대사 인식의 정초>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저자가 한국현대사의 집필에서 아쉬워한 부분은 북한사를 포함한 전체 민족의 현대사를 서술하지 못한 점이었다. 그는 현실적 조건의 어려움 외에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철저하게 공정한 하나의 역사로 엮어낼 것인가' 하는 역사기술상의 문제와 또 '뒷날 평화통일·대등통일이 되고 난 후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을 만큼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느냐' 하는 어려운 문제 때문에 쓰지 못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주석 5)

<고쳐 쓴 한국근대사>와 <고쳐 쓴 한국현대사>는 중국어로 번역되어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대학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또 <고쳐 쓴 한국현대사>는 한국이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가했을 때 '한국의 책 100권'에 선정해 영국의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주석
1> 강만길, <책머리에>, <고쳐 쓴 한국근대사>, 창비, 1994.
2> 강만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 창비, 1994, 9쪽.
3> 강만길, <책머리에>, <고쳐 쓴 한국근대사>, 창비, 1994.
4> 강만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 창비, 1994, 9쪽.
5> 강만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강만길 저작집 09), 창비, 2018, 51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강만길평전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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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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