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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노명우가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 작은 동네 책방을 차렸다는 소식은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의 저작을 읽던 중 사회학이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 강렬하게 다가왔고, 이후 다시 읽은 '저자 소개'는 더 강렬했다.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대학교수보다는 사회학자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 캠퍼스에 갇혀 있는 교수보다는 평범한 삶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대리하는 헤르메스이고 싶기 때문이다.

단번에 그의 팬이 됐다. 바로 뒤이어 골목길 독립서점 '니은서점'을 차렸다는 저자 소개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가보리라 하고 1년이 지나고, 또 2년이 지났다. 니은서점의 존재를 알게 된 지 2년이 지난 2024년 4월의 어느 일요일, 집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니은서점을 찾아갔다.

인연

2년 그리고 1시간, 오랜 시간이 걸려 서점을 찾아갔지만 막상 그곳에 머무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책방은 생각보다 아담했고, 손님은 필자뿐이었다. 서점 직원과 필자, 둘뿐인 작은 공간엔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깔렸고, 그 적막함이 어색했던 필자는 후다닥 책을 골랐다. 책방 주인인 노명우 교수가 쓴 신작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을 구매했다. 책을 집어들고, 결제하고, 서점을 나오는 짧은 시간 동안 직원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교수님이 계셨으면 더 좋았을텐데. 나중엔 미리 연락 주시면 교수님이 계신 시간 알려드릴게요"라고 직원이 말을 건넸고, 필자는 조만간 또 오겠다는 약속을 덜컥 해버렸다. 직원은 다시 오면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화답했다.

그 뒤로 필자와 니은서점은 인스타그램 맞팔로우를 했고, 필자가 다녀갔다는 소식을 들은 노명우 교수는 소셜미디어로 직접 연락을 해주셨다. 그렇게 필자와 니은서점의 관계는 시작됐고, 필자는 다른 모든 책을 잠시 덮어두곤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을 읽기 시작했다.
 
노명우,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클, 2020.
 노명우,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클, 2020.
ⓒ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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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정체성 지키기 위한 분투기, 사양 산업에 뛰어든 자영업자의 생존기

읽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다. 사람들은 빠르고 쉬우면서 적당히 자극적인 걸 선호한다. 재생 속도를 조절해 영상을 배속으로 본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이고, 1분 이내의 쇼츠가 떠오른 지도 꽤 됐다. 이제는 그 쇼츠마저도 진득하게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1분이라는 시간에 '진득하게'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싶기도 하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참을 수가 없어요. 왜 책은 인터넷 기사처럼 결론이 빨리 등장하지 않는 건가요! 자꾸 화가 납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냐고! 왜 속시원하게 말하지 않아!' 조금만 재미없으면 다른 정보로 건너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에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지요. (203쪽)

읽는 사람이 사라지니 출판 시장은 위축되고, 서점들도 문을 닫고 있다. 책 한 권을 출간한 필자에게 얼핏 들리는 이야기로는, 어려움을 겪는 출판사들이 작가에게 일정 정도 부담을 지게 하는 출판 방식을 최근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작가가 일정 부수 판매를 책임지는, 쉽게 말하면 직접 사들이는 식으로 말이다).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들은 그럭저럭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동네 서점들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얼마 남지 않은 독서인은 책을 10% 할인해주고 적립금까지 챙겨주며, 무료로 배송까지 해주는 대형서점으로 향하니, 동네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사회학자 노명우는 서점을 차렸다. 동네에서 책방을 운영한다는 게 어렵다는 건 웬만한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사람이. 연구자인 만큼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각종 데이터를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읽을 수 있을 테고, 거대 자본이 독점하다시피 한 서점 생태계에서 영세 자영업자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사회학자가 모를리 없을 터. 독립서점을 먼저 시작한 사람에게 "각오하셔야 해요"라는 말까지 들었다면서.

왜 그랬을까? 필자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대로 그 이유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사회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학자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저의 서점은 대학과 사회를 잇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공간, 사회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생활인이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3~34쪽) 

그렇게 탄생한 니은서점은 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커피를 팔지 않기로 했단다. 최근 작은 책방들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음료를 같이 판매하거나, 북카페처럼 운영하는 추세와는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인문, 사회과학, 예술 서적만 판매한다. 실용서나 참고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학교 근처 동네 서점들이 살아남기 위해 으레 들여놓는 책들을 판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책방 주인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제가 그 책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팔 수 있는 책은 인문서에 국한됩니다."(51쪽)

대신 참신한 방식을 도입했다. 바로 '북텐더' 시스템이다. 손님에게 맞는 칵테일을 추천해주는 '바텐더'에서 착안해 니은서점에 '북텐더'를 두기로 했다. 북텐더는 다름 아닌 책방 주인이자 사회학자 노명우다. 책방 주인은 '마스터 북텐더', 직원들은 모두 '북텐더'다.

그래도 잘 버티는 것 같았다. 니은서점이 2018년 문을 열었으니 어느덧 다섯 살을 넘겼다. 그런데 책 말미에 다다라서야 니은서점이 말 그대로 '버티는' 것임을 알게 됐다. 니은서점은 적자다. 그런데 마스터 북텐더는 '지속가능한 적자'라는 웃음이 피식 나오는 표현으로 니은서점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도 대학교수이니 월급을 받고, 그 월급의 일부를 서점을 운영하는 데 쓸 수 있었던 지금까지 니은서점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느끼기에 '지속가능한 적자'라는 표현에서 마스터 북텐더 노명우는 '적자'가 아니라 '지속가능'에 방점을 둔 듯하다. 적자여도 지속가능하다면 서점을 운영하겠다는 고백이 한동안 머리에서 맴돌았다.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이라는 책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이 책은 한 사회학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시도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책임의 발로를 담은 분투기이자, 죽어가는 시장에 뛰어든 영세 자영업자의 처절한 생존기였다.

분투기와 생존기를 다 읽었으니, 이제 앞으로의 기록이 외롭지 않도록 조만간 니은서점을 다시 찾아가야겠다. 날씨도 좋고 공휴일도 많은 5월, 여러분도 니은서점의 문을 열어보시라. 그날의 북텐더가 환한 미소로 반겨줄 것이다.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지은이), 클(2020)


태그:#책, #노명우, #이러다잘될지도몰라니은서점, #클, #독립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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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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