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봐도 초록, 보리밥 한 끼... 영혼까지 새로워진 시간

[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 179화 간현 소금산 출렁다리에서 기운을 얻다

등록 2024.04.29 10:53수정 2024.04.2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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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간현 소금산 출렁다리 ⓒ 박도

 
소금산 출렁다리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한다. 천하를 호령하던 권력자도 총 한 방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하고, 감옥에서 숨죽이며 살던 사형수가 어느 날 천하를 움켜쥐기도 하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소년시절 남의 다리 밑을 기어가던 별 볼일 없던 한 아이(한신)가 나중에 왕이 되는 이야기도 있고, 대학교 본관을 짓는 데 돌덩이를 어께에 지고 나르던 노동자가 대한민국 최대 갑부가 돼 소떼 일천 마리를 트럭에 싣고 귀향을 했던 한 재벌(정주영)도 있었다.


나는 올해로 15년째 원주시민으로 살고 있다. 이전에 원주는 '군사도시'로만 알았을 뿐 나와도 전혀 인연이 없던 고장이었다. 현직 교사시절 수학여행단을 인솔 때 당시, 서울 경서중학교 수학여행단의 모산 건널목 사건으로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단체 전세버스 수학여행은 불허할 때였기에 어쩔 수 없이 청량리에서 원주까지 열차여행으로 원주 역에 발을 디뎠던 기억, 그리고 동해안 해돋이를 보고자 밤 열차로 이곳을 지나쳤던 추억이 있었다.

그런 원주를 나는 15년째 둥지를 틀고 살다니. 지난 2010년 10월 이후 줄곧 원주시민으로 살면서 일대 가까운 곳은 산책으로, 또는 역사 답사로 거의 다 내 발길이 닿았다. 그런데 가까운 간현 유원지 소금산 출렁다리는 근처까지는 가 보았지만 정히 현장은 여태 가보지 못했다. 간혹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출렁다리를 다녀갔다는 소식도 전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지역 사람답지 않게 잘 모르는 듯 행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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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사이의 오름 숫자 표시판 ⓒ 박도

 
신록의 계절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 모처럼 날씨조차도 쾌청했다. 한 이웃이 원주 시 문화관광해설사인 바, 그는 이번 주말이 간현유원지 근무라고 나에게 동행을 권유하기에 따라 나셨다. '신록의 달'이요, '계절의 여왕'이란 5월을 코앞에 둔 때라 온 누리의 신록은 절정으로 그곳 가는 도중 어린이처럼 탄성을 연발했다. 막 돋아난 새싹과 잎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간현유원지에 도착한 뒤 숱한 관광객들을 따라 출렁다리에 오르고자 산행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출렁다리까지는 578계단을 올라야 했다. 사전 준비 운동도 하지 않고 복장조차도 갖추지 못해 오름길이 팍팍했다.

지난날 전방 보병 소총 소대장 시절에는 계단이 아닌 험준한 산길도 노루나 산양처럼 마구 뛰어다녔는데 이제는 원주 시에서 마련한 나무 계단과 오름길 손잡이를 잡으면서도 도중에 몇 차례 쉬어야만 했다. 그런데 산길을 오르면 계단과 계단 사이에는 총계단 수 578이라는 숫자와 거기까지 오른 숫자, 그리고 계단과 계단 중간에는 인생에 대한 경구들이 씌어 있어 그것들을 확인하면서 오르는 맛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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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 온다.” 는 쾨테의 금언 ⓒ 박도

 
새로운 기운을 얻다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 온다." - 괴테


"큰 희망이 큰 사람을 만든다." -토머스 폴리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찰스 다윈
 
등등의 글귀를 읽으며 오를 때마다 마치 나에게 들려주는 금언 같았다. 사실 이즈음 나는 인생의 황혼기로 극도의 저기압 속에 살았다.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감으로 도무지 삶의 의욕조차도 잃고 있다. 그런 저기압 속에 살고 있는 나에게 그 말들은 금언으로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마침내 578계단을 다 오르자 곧장 대망의 출렁다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 출렁다리는 길이 200m, 높이 100m, 폭 1.5m로 우리나라 산악 보도다리 가운데 국내 최장, 또 최고의 다리라고 한다. 다리 가운데 이르자 출렁거림이 심했고, 바닥을 내려다보자 아찔한 현기증도 났다. 거기서 바라보는 경치 가운데 최근에 놓았다는 '울렁다리'를 바라보는 그 풍치는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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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현 소금산의 출렁다리(가까운 곳)다리와 울렁(먼곳)다리. ⓒ 박도

 
그 다리를 건너자 동행 안내인은 내 기력을 눈치 채고 울렁다리는 겨울에 건너는 게 더 운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다음으로 미룬 채 거기서 하늘 바람 길을 통해 하산한 다음 유원지 근처 보리밥집에 들러 모처럼 보리밥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원래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어릴 때 보리밥 지겹게 먹고 자랐다. 그 무렵에는 세 끼 보리밥을 먹어도 부자였다. 세 끼 가운데 하루 한두 끼는 나물밥이나 콩죽, 호박죽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 지겹던 보리밥이 이처럼 맛있을 수가. 식후 셔틀 버스를 타고 바로 이웃 뮤지엄산과 오크밸리 골프장을 거치면서 언저리 신록을 눈이 시리도록 만끽했다.

내 영혼도 새로운 기운을 얻은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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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현 유원지에서 바라본 구 중앙선 철교. ⓒ 박도

   
#소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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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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