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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세월을 단 14일간 산 사람이 있다. 삐적 마른 얼굴, 얼굴 곳곳에 빠른 속도로 자리잡은 주름, 나이 육십이 넘지 않으면 흔히 보기 어려운 검버섯까지. 단식을 시작했을 때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그는 14일 동안 20년의 세월을 견뎌낸 사람처럼 보인다.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 이 대표는 지난 11월 27일부터 14일간 광화문 한국통신 앞 정확하게는 정보통신부 앞 노상에서 겨울을 맞았다. 그 사이 맞은 편 세종문화회관에는 한 기업의 전자광고로 만들어진 연하카드가 붙고, 겨울을 앞둔 낙엽은 바람결에 쓸려나가 거리는 휑하다.

굳이 왜 이런 추운 겨울에 그는 노상에서 겨울을 맞았을까. 사실 그가 맞으려 했던 것은 인터넷내용등급제 없는 자유, 그것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이다. 그는 인터넷내용등급제 폐지와 정보통신부장관 퇴진을 위해 단식농성을 해왔으며 오늘(10일) 낮 12시까지 꼬박 14일간의 시간을 물과 소금으로 살았다.

그 사이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참여연대, 민변, 영화인회의, 노들야학, 광주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등 26개 단체가 이대표의 단식농성 지지와 등급제 폐지 그리고 정보통신부장관 퇴진을 위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통신부는 이번에도 묵묵부답.

애초 이 대표는 15일간 단식을 하고 내일 기자회견을 끝으로 단식을 마감하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몸이 안 좋아져 하루 일찍 단식을 마감했고, 기자회견은 몇 글자의 성명으로 대신되었다.

"나는 단식농성을 끝내면서 연대와 지지 그리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많은 단체들과 시민에게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혹독한 시련은 있을 수 있지만 정의와 인권을 위한 우리 투쟁정신이 우리 사회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점을 가슴 속 깊이 감사한다."

혹독한 시련에 검어진 얼굴이지만 감사하는 마음에 그 검은 얼굴로 환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그. 독일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명제를 던졌지만 정보사회의 표현의 자유가 갈수록 옥죄이는 현재, 보다 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나는 표현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말에서 시작되는 의미가 아닐까.

단식을 마치고 찾은 죽전문점에서 야채죽 몇 숟가락에 또 다시 환해지는 그의 얼굴. 그는 이제 건강한 몸으로 인터넷내용등급제 폐지를 위해 투쟁할 계획이다. 단식 기간 동안 표현의 자유를 노래하는 가사까지 지었다는 그. 이런 그의 넉넉한 내공 속에서 어떤 투쟁이 솟구쳐나올지 기대가 모아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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