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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쌍용차 사태를 다룬 <MBC 스페셜> 을 보면서, 아마도 많이 슬퍼서, 훌쩍 울고 말았다. 땀과 눈물과 모기가 뒤엉킨 얼굴을 스윽 닦아내며 생각해보건대, 내가 울고 있는 것은, 아마도, 수만 번 입에 담아 이제는 더이상 닳을 것도 없는 노동자라는 단어와 그 무력해진 단어에 갇혀 억압받는 많은 희생자들과 그 닳고 닳은 단어를 멀리하고 무시하며 종국엔 값싼 조소를 보낼 보통 사람들 때문에.
 
요컨대, 노-노 갈등, 국가 경제 생각 않는 노사 갈등, 따위의 한심한 수사와 그 수사에 혹한 사람들의 성토 속에서 우리가 진짜 입에 담고 분노해야 할 노동자들의 권익 문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민노총, 비틀거리는 경제 아예 목을 조르겠다는 건가' <조선일보> 2009년 5월 22일 자 사설)
 
그렇게 생존이 걸린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파업하는 공장에서 나와 회사를 거쳐 언론을 통해 우리의 안방으로 도착할 때쯤이면, 나와 다른 사람의 문제로 치환되어 간절함은 흩어지고 도처에 과격함만 남아 여태껏 그렇게 냉소 받아 왔었다. 아마,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데, 도심 한복판에다 망루를 세워놓고 저항하여야만 했는지, 다섯 명의 소중한 목숨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사그라져야만 했는지, 개개인의 사연과 그 행동의 당위와 문제의 합리가 구별 없이 뭉뚱그려져 '철거민'이란 단어 속에 갇혀버린 사람들. 이 책에는, '철거민'이라 쓰고 '도심 속 테러리스트'라고 읽는,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았던, 그리고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처연한 삶을 그대로 녹취해 담고 있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지독히 황당하다. 20년간 일궈온 가게가 하루아침에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되어 제대로 된 평가금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고, 반지하 방이나 판잣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미 올라버릴 대로 오른 비싼 땅값의 서울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기존의 땅값만 쥐어 주거나, 혹은 불법건축물의 논리로 아무것도 주지 않고서 내쫓아버린다. 그렇게 내쫓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희망 없는 홈리스가 되어버리거나, 아니면 그 부당함에 저항하는 것이고, 후자의 선택을 한, 그리하여 '전국 철거민 연합' (이하, '전철연') 아래 조직된 철거민들은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예컨대, 2년 동안의 철거 투쟁을 통해 '개발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 보상'과 '가이주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재입주 시 모든 편의시설을 주택 공사에서 책임지고 해준다.'는 합의 내용이 담긴 '공문서'를 받아낸 성낙경 씨 같은 경우는 철거민들의 많은 투쟁 사례 중 희망으로 생각되는 경우이기도 하지만(p.19),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역들에게 ""야, 씨발년아, 너 밤길 조심해" 공포스러운 말, 상스러운 말을 마구" 듣거나 (p.42), "골목 담 위에 판자를 이어서 천장을 만들어" 살며 투쟁을 하거나(p.131), "서대문경찰서에 항의하러 갔다가 연행"되어, 실형을 선고받기도 하며(p.97), 심지어는 "4층에 올라갔다 불이 나서" (p.255)죽기도 한다.

 

그러나, 아마도, 불합리에 대항하는 이 모든 행동이 일종의 반사회적 행동으로 규정되면서, 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요컨대 편견이다. "<중앙일보>, <조선일보> 나오는 것 보면 전철연 중앙이 어떻고, 배후가 어떻다 그락카는데. 야, 내가 보면 진짜 미칠 노릇인기야."(p.119)

 

그렇게 보수 신문이라는 필터를 거치고 나온 '전철연'은, 그 단체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연민과 사정은 모두 배제된 채, '중앙'과 '배후'가 존재하게 되는, 그래서 뭔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공산적화'를 꿈꾸는 '친북좌익세력'들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일종의 하수 단체가 되고 말았다.

 

작년, 광장에 나갔을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 단어들은 그 단체를 만든 약자 개인들의 문제에 연민을 갖지 않아도 될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약자들이 그들에게 처한 불합리를 고치기 위하여 연대하면, 연대한 약자들은 졸지에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폭력 집단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더이상 잃을 것도 없고,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도 갖지 못한 그들의 극렬한 행동은 '살아남은 약자'인 우리에게도 종종 거부감을 느끼게 하곤 한다. 아마도 그 생각들은, 내가 아니다, 저렇게 될 리 없다, 자신의 집이 철거되기 전의 철거민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책에서,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들을 내내 후회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이 철거돼보지 않고서는 이 모든 불합리를 깨닫지 못할 것이라며 한탄해 했다.

 

우리도 아마 알 수 없을지 모른다. 가끔 안방에서 그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보며 혹은 텍스트를 읽으며 그렇게 떼쓴다고 별로 달라질 것도 없을건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우리 모두 같이 촛불을 들고 MB를 씹고 선거 때 한나라당을 찍지 않을지언정, 보통 사람들과 그와 별로 다르지 않을 철거민들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긴 시간이 흐르더라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게다.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입에 담고 말미암아 그 단어를 농락하는 세력들에게 저항해서, 아마도 그럴 린 없겠지만, 그렇게 이명박이 물러난다면 세상이 정말 좋아질까? 우리가 민주주의를 든 그 손으로 철거민들과 노동자들과 많은 약자들의 문제를 꽉 쥐고 분노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졸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강곤 외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9)


태그:#철거민, #용산참사, #여기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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