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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런던 타워브릿지 전경.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런던 타워브릿지 전경.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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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부터 '10만인리포트'에 연재를 시작하는 이주빈 기자입니다. 연재 이름을 보고 미리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하지 않고 자판을 치는 이른바 '독수리타법'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고등학교 문예부 시절에 2벌식 타자기를 두 손가락으로 타닥타닥 치던 습관을 여태 고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속도는 나름 빨라서 어지간한 주의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제가 '독수리타법'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튼, '이주빈의 독수리타법'에선 기사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느리지만 꼼꼼하게 전해드릴까 합니다. 이 코너를 통해서 여러분과 자주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주빈의 독수리타법' 그 첫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저를 '표류 전문 기자'라고 부릅니다. 취재현장에서 적지 않은 표류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새만금 방조제 건설을 반대하는 어민들의 해상시위를 후배들과 취재하러 갔다가 서해에서 표류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탄 배가 바다 한가운데 뻘등에 갇혀 고립되고 만 것입니다. 물이 들 때까지 6시간 동안 우리는 꼼짝없이 겨울추위와 배고픔에 벌벌 떨어야 했습니다.

또 한 번은 소설 <관부연락선>을 쓴 작가 이병주의 문학세계를 논하는 선상(船上) 토론을 취재하러 갔다가 현해탄에서 표류했습니다. 선상 토론은 부산과 오사카를 왕복하는 여객선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그만 태풍을 만나 2만 톤이 넘는 그 큰 배가 현해탄과 일본 열도 사이를 표류하는 황당한 경험을 했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하늘에서 표류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을 동행 취재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탔을 때 일입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는 생각에 직항을 타지 않고 광저우에서 경유하는 중국 국적기를 탔습니다.

근데 이 비행기가 네팔 카트만두 상공에 도착했는데 착륙을 하지 않는 겁니다. 카트만두 상공을 한참을 선회하던 비행기는 다시 광저우 공항으로 돌아가 착륙했습니다. 나중에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 우리는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기체 결함이 발생해 대형 사고를 우려한 네팔 당국이 착륙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 밖에도 이런저런 소소한 표류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취재 현장이 지역에 많다보니 다른 기자들에 비해 표류할 확률이 그만큼 높은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 '표류 전문'이라고 놀리면 저는 "표류는 하지만 막장으로 가진 않는다"며 웃곤 합니다.

"하루 날씨에 사계절이 다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런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사진은 비 내리는 날, 빅벤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런던 시민들.
 "하루 날씨에 사계절이 다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런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사진은 비 내리는 날, 빅벤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런던 시민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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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전문'인 저는 지금 영국 런던에 있습니다. 몇 달 동안 영국과 아일랜드 등지에 머물며 기획기사와 현장 기사를 쓸 예정입니다. 제 명함엔 'UK correspondent(영국 특파원)'이라고 찍혀 있지만 저는 스스로를 '영국의 장기체류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스치는 리포트가 아닌 가슴에 담을 수 있는 리포트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는 '런던 별곡'입니다.

취재지역으로 영국과 아일랜드를 선택한 것은 오로지 제 의지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번 기회에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꾸로 그런 미국의 뿌리이며,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우리가 사는 오늘을 응시하고 싶었습니다.

입담 좋은 언론은 '영국은 미국의 푸들'이라고 조롱하곤 합니다.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에 앞장서서 행동하는 '쇠락한 대영제국'의 현재를 신랄하게 비꼬는 표현이죠.

영국 사람들이 이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푸들 얘기가 나오면 오기가 발동한 영국인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미국 빌보드 차트엔 미국 애들은 없고 영국 애들만 있다며?" 세계 음악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빌보드 차트. 이 차트의 80% 이상을 영국 가수나 밴드가 차지하고 있다고 으스대는 것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런던 날씨는 변덕을 부렸습니다. 흐린 날씨에 발이 시릴 정도로 바람마저 심해 웅크리고 있으면 볕이 창창히 들고, 햇살이 좋아서 산책이라도 해볼까 하면 어김없이 비가 내립니다. 오죽하면 런던 하루 날씨에 사계절이 다 있다고 하겠습니까.

초저녁 어둠이 깔리는 런던의 현재 기온은 섭씨 11도, 중앙집중식 난방기에선 따뜻한 바람을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환절기입니다. 심술부리는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저는 조만간 새로운 소식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태그:#런던, #미국, #푸들, #빌보드, #템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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