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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공항.
▲ 베이징 셔우두 공항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공항.
ⓒ 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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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공항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 어떤 모양이든, 공항이기만 하면, 비행기를 타고 떠날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하면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일본의 인기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쓴 소설 <키친>의 첫 문장을 표절한 내용이다. 그 소설 첫 머리 문장에서 부엌을 공항으로 치환하기만 하면 아주 완벽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된다.

공항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미 짐작하고도 남을 만큼 유치한 것이다. 익숙한 세계에서 낯설은 미지의 장소로 날아갈 수 있다는 기대와 흥분, 변화없는 심심한 일상과 역시 너무나 습관적이고 익숙해져서 별 볼 일 없어진 주변 세계에 대한 싫증에서 완벽하게 탈출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하고 속삭여 주는 장소.

그중에서도 공항이 주는 가장 압도적인 흥분은 낯선 타인들의 세계에서 혹시라도 뭔가 짜릿하고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신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불안이 동시에 교차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온다. 마치 처음으로 번지점프를 하러 가는 심정처럼 수십 번 수백 번을 가도 늘 새롭고 질리지 않는 장소가 바로 공항이다.

공항에는 모든 종류의 만남과 이별, 떠남과 돌아옴이 있고 그곳에서 어떤 이는 희망을 찾아 떠나고 또 어떤 이는 절망을 안고 돌아온다. 우리가 상상할수 있는 모든 종류의 희로애락이 비행기 한 장의 티켓 속에 은유되어 있는 장소. 나는 바로 그런 공항을 가장 좋아한다.

부평초 같은 신세... 여행가방을 싸다

여행은 낯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한 동경이다.
 여행은 낯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한 동경이다.
ⓒ 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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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937. 14:10분 베이징발 런던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목욕재계'하고 이미 다 싸놓은 가방을 다시 풀어서 마지막 최종 점검을 한다. 내가 가장 완벽하고 성실하게 잘 할 수 있는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여행가방 싸는 일이라고 답할 수 있다.

다른 일들은 하기 싫어서 혹은 세월아 네월아 하며 게으름의 최종 마감시간에 도착해서야 겨우 수습한다. 하지만 여행 가방 싸는 일만큼은 미리 준비하는것도 부족해서 재차 삼차 엄격한 검수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몇 시간 뒤면 이 지루한 세계를 탈출해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하늘 위를 날아가고 있을 생각을 하면 이깟 짐가방쯤이야 열 개든 백 개든 얼마든지 행복하게 쌀 수 있을 것 같다.

15년 전, 중국으로 오는 유학 짐가방을 아주 신바람 나서 싸는 나를 보고 엄마가 그랬다.

"점쟁이가 그러더라. 언젠가 너는 태평양을 건너 아주 멀리 날아갈 거라고.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서 늘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떠돌고 싶어 한다고. 조심해, 이것아. 그러다 인생도 부평초 신세가 될 수 있어".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그 점쟁이가 어떻게 그리도 용하게 내 인생을 '점 쳤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허파든 콧구멍이든 바람이 들어서 중국으로 잠시 여행 같은 짦은 유학을 왔다가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처럼 내 날개옷을 훔쳐간 남자에게 붙들려(?) 아이들 둘을 낳고 지금까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채 중국 땅을 떠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날개옷은 언제든지 재생 가능해 어딘가로 훨훨 떠나가고 싶을 때마다 임시로 만들어 입을 수 있다. 나무꾼 남편이 조금이라도 내 말을 듣지 않거나 속을 썩일 때면, 아이들을 안고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갈 수 있다고 경고할 때도 그 날개옷은 아주 훌륭한 무기가 된다. 여권과 비자만 있으면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비행기는 나에게 가장 완벽한 날개옷이다.

어쨌거나 점쟁이의 예언대로 나는 고국을 떠났고 부평초 같은 삶은 아닐지라도 가끔은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닌다. 게다가 이번에도 '태평양을 건너 아주 멀리 날아간다'는 점괘가 꼭 들어맞았다.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곳, 유럽의 중심 영국 런던으로 말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 J가 2주간의 휴가여행으로 런던에 간다고 했을 때 나는 가족들과의 상의여부, 대략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는 경비 문제 등 모든 가능한 난관들에 대해 단 한치의 망설임이나 고민없이 무조건 '따라 간다'는 결정을 했다.

사실 J는 런던행을 결정하기 전에 나에게 아프리카 여행을 제안했다. 만년설이 덮힌 킬리만자로와 야생 동물들이 날 것 그대로 뛰어 다니는 세렝게티 초원 위를 바람처럼 '달려보자'는 J의 제안은 솔깃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암흑 같을 것'이라는 아프리카에 대한 잠재된 편견과 마음의 장벽 탓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멀기도 멀었지만 가기 전에 말라리아 예방주사 등 최소한 서너 개 이상은 맞아야 된다는 각종 예방주사도 무서웠고 세렝게티 초원 위를 무법으로 날아다닐, 성질 사나울 것으로 '상상되는' 모기와 벌레들도 살 떨리게 두려웠다.

유럽에 갔다 온 엄마... 기세등등해졌다

여행은 타인들의 세계에서 뭔가 짜릿하고 독특한 경험을 기대하게 한다.
 여행은 타인들의 세계에서 뭔가 짜릿하고 독특한 경험을 기대하게 한다.
ⓒ 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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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동하지 않았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프리카로 상징되는 '비문명' 세계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종합 편견 세트'말고도, 가 봤자 유럽을 다녀온 것만큼 남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사지 않을 것 같은 속물적 허영심이었다. 기왕에 큰 돈 쓰면서 가는 여행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티나게 자랑도 하고 '니들은 언제 가볼래?'하며 속으로 온갖 약을 올리며 동네방네 얄미운 소문도 내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하게 런던행을 결정하게 만든 '힘'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어쩌다 한 번씩 듣게 되는, 나름 한 번 이상 콧구멍에 유럽 바람을 쐬고 온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서 듣게 되는 소위 '문명세계 견문기'에 대한 불타는 시기심과 질투다.

"아직도 유럽을 한 번도 안 가 봤어? 그동안 뭐하고 살았어?! 남들은 젊었을 때 배낭여행이나 신혼여행으로 한두 번 이상은 가봤는데 그 나이 되도록 그래 유럽 구경도 못해 봤단 말이야? 더 늙으면 여행 다니는것도 귀찮아진대. 베이징 촌구석에만 있지 말고 문명세계도 좀 구경해봐".

열 살짜리 딸 아이의 '때 묻지 않은' 표현을 빌리자면 그건 나에게 "못 가봐서 약 오르지?"라는 '자랑질' 혹은 '염장질'과 다를 바 없었다. 난들 이 나이 되도록 코 묻은 어린애들도 한 번씩 유람 간다는 유럽 '문명세계'를 안 가보고 싶었을까. 살다 보니 어찌어찌 사정상 못 가본 것이지. 그런 얘기들을 농담처럼 들을 때마다 겉으로는 "가보니 과연 유럽이 좋긴 좋지?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어디 유럽을 따라 가겠어. 근데 언제 그렇게 유럽을 다 가 봤어?"라며 온갖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밸이 꼴리고 심사가 사나웠던 게 사실이다. '니들이 가 봤댔자 여기저기 도장이나 찍고 인증샷이나 찍어대다 왔겠지'라며 애써 아니꼬운 마음을 위로하길 수만 번.

3년 전, 남편 몰래 모아둔 쌈지돈을 큰 맘 먹고 풀어서 엄마를 유럽 여행 보내준 적이 있다.

"큰 엄마는 유럽만 벌써 몇 번을 다녀왔고, 이모도 캐나다와 미국을 밥 먹 듯이 여행하는데 나는 네 출산 뒷바라지 하러 베이징이나 몇 번 왔다 갔다 한 게 전부구나. 죽기 전에 나도 유럽 구경 좀 하면 진짜 좋겄다."

퇴직한 이모부와 유럽여행을 간다며 자랑하는 이모 전화를 받고 혼자 푸념을 하는 엄마가 좀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 둘 출산 뒷바라지를 하며 '쌔가 빠지게' 고생한 노고에 보답도 할 겸 통 크게 아끼던 쌈지돈을 꺼내 드렸다. 그 돈으로 엄마는 2주일 가까이 유럽 3개국을 유람하고 돌아왔다. '어땠냐'고 감상을 묻는 내게 엄마 역시 어느새 '가본 사람' 행세를 하며 '그들처럼' 내 가슴에 온갖 염장을 질렀댔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뭐. (표정이 급 변하며) 근데 사진기를 들이대면 다 그림이야, 그림. 빵도 한국에서 먹던 빵이랑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더라. 커피맛도 아주 기가 막히고. 말은 못 알아 들었지만 사람들도 다 친절하고 좋아 보였어. 그동안 한국에서만 지내다 꼬부랑 할머니 된 게 억울해 죽겠다! 이런 좋은 세상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꼬부랑 할머니가 된 엄마도 '가 본' 유럽을 나만 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화딱지가 나고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다행히도 나는 엄마처럼 꼬부랑 할머니가 되기 전에 유럽 구경을 가게 되었으니 엄마 표현대로 '복터진 년'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코흘리개 애들 둘과 언제 바람날지 모르는 혈기 왕성한(?) 중년의 남편을 남겨두고 혼자만 룰루랄라 여행을 간다는 날 보고 주변 지인들은 다들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 위인'이었을 거라고 진담 같은 농담을 하며 연신 '부러워 죽겠다'고 했다. 그래. 실컷들 부러워 해. 나도 예전에 당신들이 그렇게 부러웠거든. 좌우지간 복이 터졌건 아니면 어느날 '기적이 찹쌀 경단처럼 찾아와서' 나에게 런던행 티켓을 선물했든지간에 중요한 건, 어쨌든 나도 간.다.는.것. 이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여행에 대한 기대와 상상으로 들떠 있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마음을 읽을 수 없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한 채 말 없이 운전만 하고 있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 물가 비싸니 돈 좀 아껴 써라", "늦게까지 술 마시지 마라", "애들 생각해서 좀 빨리 돌아 와라" 등등 영감같은 잔소리들을 한바가지 해 대더니 막상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불안한 침묵만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침묵 속에 어떤 마음이 숨겨져 있는지를. 그건 예전에 내가 '가봤던 이들'에게 느꼈던 심사 뒤틀리는 시기와 질투,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라는 것을.

'런던에 여행 간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을 때,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의외로 반색을 했다. "나도 그럼 같이 갈까?"라고 '치명적인' 뒤통수를 치면서 말이다. 남편은 평소에 주말에도 바쁜 일이 잦아서 아이들과 가까운 외곽으로 드라이브 하는것도 힘들었다. 또 걸으면 쉽게 지친다는 '약간의' 평발을 이유로 장시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 '험한'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안락한 바닷가 리조트나 호텔 등에 머물면서 아이들과 대충 물놀이를 하는 시늉을 하다가 슬금슬금 나와서 비치 파라솔 안 의자에 '드러 누워'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채 각종 수영복 스타일의 '여인들'을 감상하다 지쳐 골아 떨어지는 '분'이다. 굳이 여행 스타일을 말하라고 한다면 휴양지형&여인 풍경 감상형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와는 달리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이며 휴양지형 여행을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짧은 가족 여행을 가도 대개는 얼굴을 붉히며 크고 작은 싸움을 자주 했었다. 여행 스타일로만 보자면 우리는 예전에 벌써 이혼을 수십 번 하고도 남았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이팔청춘 꽃 같은 연애를 하는 '닭살스런' 연인 사이도 아니고, 단지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이번 영국 여행을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사실 토네이도급 재앙이 예고된 '사건'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면 '세상에 어떻게 저런 아내가...!"라고 벼락을 맞거나 아니면 최소한 욕 먹어 죽을 일일까?

"여보, 런던에 같이 가"... 내가 먼저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혼자' 가고 싶었다. 더군다나 이번 여행은 서울에서 출발하는 20여 년지기 친구와 런던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동갑내기 친구도 함께 하는 나름 3인3색3국 여자들의 중년 힐링 여행이었다. 만일 남편이 '끼게 되면' 이번 여행은 우리들 모두에게 중년의 고난 여행이 될 수도 있음을 나는 너무도 '뻔하게' 예측,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 '흉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낼수는 없는 법.

"가고 싶어? 그럼 같이 가지 뭐. 근데 중국인(남편은 중국인)들이 영국 개인 여행 비자 발급 받는 게 가능해? 단체 여행 비자만 주는 거 아냐? 당신 바쁘니까 내가 한번 알아볼게. 비자 문제만 해결되면 같이 가자!"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남편에게는 '같이 가자'고 일단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못 갈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중국인이 개인적으로 영국 여행 비자를 받을 수는 있어도 갖가지 '서류 대첩'을 겪어야 하고 심사 기간도 짧게는 2주일 길면 한달 가까이 걸린다는 '소문'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잡혀진 여행 일정 안에 비자를 받으려면 웬만한 고위급 수준이 아니고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살을 맞대고 산 부부라 할지라도 국적이 가져다 주는 이런 비극적인 사태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는가. 중국이 발전하고 거대해지면서 중국인들에게 한국은 갈수록 자신들의 발 아래 발톱 같은 미약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여권'이 가져다 주는 '자유' 앞에서 아직까지는 한국 여권의 파워가 남편의 중국 여권보다는 '쎄다'. 이것도 머지 않아 역전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남편의 비자는 끝내 해결되지 못했고(알아보는 시늉만 했다) 결국 나는 애초의 바람처럼 '홀로' 런던행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우리는 긴 이별 앞에 애써 슬픔을 꾹꾹 삭이는(것처럼 보이는) 오래된 연인들처럼 서로를 일부러 외면하고 침묵을 말 벗 삼아 공항으로, 공항으로 내달려 갔다. 침묵이 어색한 틈을 타, 나는 이런 저런 엉뚱하고 재미있는 상상들을 해 보았다.

어느 날, 옷장 깊숙이 숨겨둔 날개옷을 찾아내 아이들을 안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선녀 아내를 지켜 봐야 했던 나무꾼 남편의 심정은 어땠을까? 겉으로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 위를 날아가는 아내를 향해 '가지 마오 가지 마!'라고 외쳤을 테지만, 속으로는 그 역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을런지.

아름다운 선녀는 살아보니 허구한 날 잔소리 폭탄과 돈 타령을 밥 먹듯이 늘어놓는 '지겨운 마누라쟁이'로 변해갔다. 한때 빛났던 미모도 세월 앞에서는 빛바랜 기억 속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지금은 웃으면 사나운 주름살이 눈가에 자글자글 잡초처럼 피어나고 팔뚝과 뱃살의 굵기는 쇠 심줄보다 더 질긴 공포의 근육으로 굳어져서 감히 그 앞에서 '맞장 뜰' 생각을 했다간 당장 요절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나무꾼 남편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옛날 하늘 하늘했던 날개옷은 이미 그 튼실한 팔뚝과 뱃살의 부피를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 솔기가 터져서 아내는 하늘 위로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한 채 다시 땅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것을. 죽을 힘을 다해 얼마 동안 다이어트를 해서 예전의 몸매를 기적적으로 회복한다 해도 그때는 아이들이 너무 커버려서 두 팔에 안고 날아 오르기에는 버거울 것이라는 사실도. 이미 그는 오래 전부터 훤히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내여. 어디 한 번 날 수 있으면 날아 보라고, 속으로는 심지어 코웃음까지 치면서 말이다.

어쩌면 더 슬픈 사람은, 멀리 날아가지도 못하고 다시 땅으로 추락하는 아내가 아니라 바로 나무꾼 자신이라는 더 기가 막히고 반동적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아내가 몸에 안 맞는 날개옷일망정 꾸역꾸역 끼워 입고 힘든 비행에 성공한다면, 비록 당장은 슬프고 서럽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 역시 운명이라 믿고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누가 알겠는가. 잔소리꾼 아내가 사라진 새로운 삶이 더 행복할지를. 가장 비극적인 일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으로 다시 추락한 아내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내 인생 돌려줘~"하며 이전보다 더 센 강도로 잔소리와 바가지를 퍼부어 대며 매일같이 자신을 들들 볶아대는 일일 것이다. 뭐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인생'이라고 믿겠지만.

공항에 도착하자... 남편이 웃었다

공항이 가까워 오고 있다. 아직도 무표정인 채 침묵 모드를 사수하고 있는 남편의 머릿속에는 혹시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런 나무꾼의 생각이 들어 있는게 아닐까? 아내여. 제발 멀리 멀리 훨훨 날아가는 데 '성공' 하라고.

여행은 '감옥처럼 변해 버린 집과 판에 박힌 생활로부터의 탈출'이다.
 여행은 '감옥처럼 변해 버린 집과 판에 박힌 생활로부터의 탈출'이다.
ⓒ 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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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지사는 결국 살다가 죽는 일이고 모든 것은 어찌 되었든 해피엔딩이라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절반의 인생을 살아온 내가 대충 어림짐작하고 있는 나름 개똥같은 인생철학이라면 철학이다. 공항에서 헤어져 각자의 게이트를 향해 가면서 어쩌면 우린 속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서로의 부재가 주는 오랜만의 자유와, '감옥처럼 변해 버린 집과 판에 박힌 생활'로부터의 탈출을 눈 앞에 둔 각자의 공항 밖 해피 엔딩을 상상하면서.

가끔은 서로의 부재를 인정해 주고 그 부재가 주는 자유와 편안함을 즐길 수 있으며 또 그러한 부재를 배려해 줄 수 있는 관계라면 그 부부 혹은 연인들은 이미 곰팡이가 필 정도로 잘 숙성되고 발효된 구수한 메주 같은 사이일 것이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껌딲지처럼 붙어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다고 한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노인이 되는 것처럼 사랑도 시간과 세월의 노화를 피할 수는 없다.

발효가 잘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숙성을 거치면서 적당한 바람과 햇볕 등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 부부 혹은 연인 간의 사랑도 때로는 적당한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한 채 더 깊은 관계의 숙성을 위해 서로에게 적당한 공기와 바람, 햇볕을 공급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의 사랑이, 그리고 관계가 더 고운 곰팡이를 피워가며 썩지 않는 메주처럼 아름답게 익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과 남편을 두고 혼자만 신나게 떠나는 여행을 이런 저런 온갖 아름다운 논리(?)로 포장하고 합리화하는 사이에 드디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 공항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카트를 가져와 짐 가방을 실을 때에야 남편의 얼굴에 비로소 표정이 나타난다. 그것도 미소가.

"몸 조심하고 잘 다녀와!"

탑승수속 하는 과정을 보지도 않은 채 그는 공항 입구에서 카트에 짐만 실어주고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와 함께 천천히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상상이 맞는 듯하다. 지금 남편은 내가 공항으로 오는 길에 상상하고 추측했던 나무꾼의 자유를 찾은 것이리라. 그러거나 말거나.

카트를 밀고 공항 안으로 들어서는 내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다. 이제 2시간여쯤 뒤면 나는 푸른 상공 위를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 순간을 위해 나는 보들레르가 읊었다는 멋진 문장도 한 구절 달달 외워왔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 않는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혹시라도 날 찾는 연락이 올까 봐 비행기에 탑승하기도 전에 나는 핸드폰의 전원을 꺼 버렸다. 이제 2주 동안 베이징과는 완벽하게 작별을 고할 생각이다.

여행은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여행은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 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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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여행기
지난 5/31~6/14일 2주 동안 영국 런던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 여행은 한국에서 43년을 살고 있는 친구 J와 런던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K, 그리고 중국 베이징에서 14년째 살고 있는 필자가 함께 했다. 엄마 아빠와 석 달 동안 유럽 여행 중인, 런던에서 만난 일곱 살짜리 꼬마 연이는 우리들을 각각 '한국이모, 중국이모, 영국이모'라는 애칭으로 불러 주었다.

3개국에서 '헤쳐 모인' 우리들은 다른 여행 고수들처럼 배낭 하나 둘러메고(그러기에는 너무 늙어버리기도 했다) 현지 지도와 튼튼한 두발 그리고 그동안 갈고 닦은 여행용 혹은 전투용 영어에 의지해 '세계를 누비는 지구별 여행전사' 같은 전투여행을 했거나 또는 그런 여행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여행은 사실 런던의 살인적인 고물가로 어쩔 수 없이 매일 지하철과 기차를 번갈아 타고 하루 종일 걸어야만 했던 '고난의 행군'이기는 했다.

하지만 매일 짬짬이 길거리 펍에서 시원하고 맛좋은 영국식 맥주를 들이키며 '영국이모'가 들려주는 런던살이의 희로애락을 듣는 재미, 그리고 그녀의 유창한 영어에 의지해 런던을 떠나는 날까지 그 어떤 언어소통의 장애 없이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을 '즐기다'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왔다.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협한 이 여행기는 영국과 런던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이성적이고 학구적인 여행기가 아니라 대부분은 펍에서 맥주 한 잔 홀짝이며 나누던 잡담 혹은 사담같은 수다들임을 밝혀둔다.



태그:#영국 ,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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