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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3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우리들의 이야기'란 주제로 조합원 대상 수기 공모를 진행했습니다. 수기 공모 수상작을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편집자말]
수술실(자료사진)
 수술실(자료사진)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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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간호사로 근무하던 병원 수술실에 환자 신분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생년월일은요?"
"수술 부위가 어디세요?"
"위요…"


이내 잠이 들었고 깨어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나의 회복을 돕고 있었다. 내 위는 암 조직과 함께 3분의 2가 잘려져 나간 후였지만 일찍 발견한 덕에 다행히 항암치료는 면할 수 있었고 몇 개월 병가 후에 복직했다. 100% 예전 몸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5년을 무사히 넘겼고 완치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수술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수술실에는 발암물질이 많다. 폼알데하이드, 방사선, 강한 소독멸균용액들… 그런 것들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나 외에 갑상선암 2명, 유방암 4명이 추가로 발생했다. 아무리 암이 흔하고 100명이 넘는 인원이 있는 곳이니 발병률이 높을 수 있겠지, 라고 생각은 해보지만, 보통의 회사원들보다 더 안 좋은 환경에 많이 노출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단 암뿐만이 아니다. 근무 중 날카로운 기구들에 상처를 입을 때도 많고, 각종 장비에 부딪혀 타박상을 입기도 한다. 속도를 생명으로 일하다 보면 염좌, 골절도 수시로 일어난다. 그런데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제때 진료를 못 본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시간에 밥을 먹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진료 시간이 근무 시간과 겹치니 어쩔 수 없이 근무 시간에 가거나 점심시간을 쪼개서 가야 하는데 그마저도 잘 맞추지 못하면 왜 예약을 그때 잡았냐며 구박받는다. 우리는 환자가 되어도 간호사의 신분으로 일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프면 안 되는 사람들, 간호사

환자들은 대부분 마취가 되어서 수술실에 있는 우리를 보지 못하지만, 손가락을 꿰맨 실밥이 달린 채로 일하는가 하면, 깁스한 채로 일을 하기도 한다. 소변을 너무 참아서 방광염에 걸려 혈뇨를 본 적도 있다. 새벽에 응급실에 갔다가도 다음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출근해야 한다. 방광염 따위로는 감히 아프다고 명함도 못 내밀기 때문이다.

신규 간호사 시절에는 배가 아픈 걸 참고 일하는 나에게 선배가 따뜻한 물병을 배에 대고 있으라고 해서 그렇게 참고 근무를 마쳤다. 그러다가 결국 저녁에 응급실에 갔는데 맹장염이었다. 따뜻하게 하면 안 됐었다. 만약 터졌으면 복막염으로 번질 뻔했다. 그날도 장기이식 수술이 진행 중이었고, 여유 인력이 없어서 다음날까지 기다렸다가 수술을 받았다.

위암 진단을 받았던 날도 울면서 병원에 보고했고, 멘탈이 와르르 무너져 정말 다음날 출근을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는데 '사람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당장 수술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물론 하루 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정신으로는 환자를 대할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수술을 받기 위해 각종 검사를 하다가 갑상선 수치가 안 좋아서 전신마취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담당 의사는 갑상선 수치를 교정하자고 했고, 요오드를 먹었지만 좀처럼 수치는 안정화되지 않았다. 병원에 병가를 쓰고 싶다고 말했더니 갑상선 수치 이상으로 병가를 받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나를 무척 나약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나는 하루빨리 수술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대학병원 간호사인 나, 엄마로선 빵점
 
수술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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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프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간호사의 자녀들 또한 절대 아프면 안 된다. 수술 중에는 연락을 받지도 못할뿐더러 받았다고 한들 대체인력이 없으니 당장 아이에게 달려갈 수 없을 때가 많다. 아이를 맡기는 기관에도 아예 1차 연락망에 내 번호를 쓰지 않게 되었다.

나는 대학병원 십수년 차 간호사이지만 엄마로서는 빵점이었다. 더구나 3교대를 하다보니 들쭉날쭉한 근무 일정에 맞춰 도우미를 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교대근무나 제시간에 이루어지면 모를까. 수술 시간이라는 게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평균값을 토대로 배치한 인력으로는 늘 연장근무를 피할 수 없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교대해 줄 인력이 없어서 퇴근하지 못하는 날이 많다. 간혹 이런 상황을 잘 모르는 신규간호사들은 퇴근 후 약속을 잡았다고 혼나거나, 운동 예약 시간에 못 가서 돈을 날려버리기 일쑤다.

최근 경험한 일이다. 그날은 이브닝 근무였고, 5월 초 연휴로 인해 정규수술을 많이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늦게까지 많은 방에서 수술이 진행됐다. 평균적으로 3방을 열고 한방에 두 명씩 6명의 이브닝 근무자를 배정하는데, 그날은 5방을 하게 되어 나머지 4명은 데이 근무자로 채워야 했다. 연장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던 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응급수술 의뢰가 들어왔다. 우리가 아무리 인력이 부족해도 의료인의 의무만 있을 뿐, 거부할 권리는 없다. 결국 4명의 데이 근무자는 이브닝과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였고, 2명의 이브닝 근무자는 퇴근을 못 하고 나이트 근무자와 남은 수술을 이어 나갔다.

이런 근무 환경에서 아프지 않고 일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환자의 입장이 여러 번 되어보니 환자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일할 때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정말 생각이 안 난다.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최선을 다할지 고민하고 집중하다 보면 목마름도, 소변도, 배고픔도 참아진다. 이러한 수고를 아는지 고맙게도 내 아이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퇴근하고 긴장이 풀려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든 나에게 이불도 덮어주고 아빠에게 조용히 하라고 당부도 한다. 나는 더욱더 건강한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얼마나 지나야 이 어려움이 해소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간호법 제정 등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후배 간호사들이 아파서 떠나지 않도록, 좀 더 건강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는 환자의 몸이 아닌 건강한 간호사로서 환자에게 최선의 간호를 제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이팅게일 선서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새겨본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나은(가명)씨는 현직 간호사입니다.


태그:#보건의료, #병원, #인력부족,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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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보건의료노동자의 친구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모든 시민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한국의 대표적 산업 노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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