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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21일 경남 소재 A중학교(사립) 관계자 등이 모인 네이버 밴드에 올라온 게시글. 학부모가 기간제 교사 개인 SNS 표현을 문제삼았다.
 2023년 9월 21일 경남 소재 A중학교(사립) 관계자 등이 모인 네이버 밴드에 올라온 게시글. 학부모가 기간제 교사 개인 SNS 표현을 문제삼았다.
ⓒ 김화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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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기간제 교사에게 자필 사과문을 쓰게 한 뒤 그 내용을 문제 삼아 사과문 재작성을 요구한 학교의 행위를 인권 침해로 판단했다.

인권위 침해구제 제2위원회는 지난 1월 19일 관련 사건 결정문을 통해 "피진정인(학교)의 행위는 진정인(기간제 교사)의 윤리적 판단을 강제해 진정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학교 교원인사위원회에게 해당 교원의 의사에 반해 사과문 또는 반성문의 작성을 요구하는 의결을 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학교 측 "잘못 인정 안 해"... 교사 "A중학교 비난 아냐" 

인권위 결정문과 <오마이뉴스> 취재에 따르면, 경남 거제 소재 A중학교(사립) 소속 기간제 교사 B씨는 지난해 9월 3일부터 21일까지 카카오톡 프로필과 인스타그램 스토리 등에 "썩은학교", "썩은학교 올래요?", "ㅆㅇㅎㄱ"라고 적었다.

9월 21일 게시글을 발견한 학부모는 이를 캡처해 학교 구성원 등이 가입한 네이버 밴드에 올렸고 "소중한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인데 이게 무슨 말인가. 좋은 학교라고 오라 할 땐 언제고"라며 항의했다.

A중학교는 나흘 뒤인 9월 25일 첫 교원인사위원회를 열었고 10월 12일 B씨의 행위에 대해 ▲ 자필 사과문 제출 ▲ 학교 명예 실추 게시물 작성 금지를 의결했다. 학교 측은 ▲ 정황상 학교를 대상으로 게시글이 작성된 점 ▲ 학생·학부모·교직원 등에게 상처입힌 점 등을 고려해 B씨에게 이 같은 내용의 교내특별과제를 부여했다.

학교는 기간제 교원이 업무상 과오를 범했을 경우 교원인사자문위원회를 열어 서면으로 해고 또는 교내특별과제를 부여할 수 있다(2023년 3월자 경상남도교육청 계약제 교원 운영지침). 

B씨는 10월 16일 사과문을 제출했으나 A중학교는 나흘 뒤 다시 교원인사위원회를 열어 'B씨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학생·학부모·지역주민·교직원에게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았다'고 보고 재차 사과문을 작성하도록 의결했다. 

B씨는 사과문에 '해당 게시글의 내용이 A중학교를 지칭한 것이 아니'며 '앞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게시글을 올리지 않도록 다짐한다'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 "강제성 없다고 보기 어려워... 일방적 작성 요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전경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전경
ⓒ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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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문 재작성을 통보받은 B씨는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인권위는 A중학교가 B씨의 "양심의 자유(헌법 19조)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판단 근거로 '근로관계서 발생한 사고 등에 관해 단순 사건 경위를 보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사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과문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례(2009두6605) 등을 들었다.

인권위는 결정문을 통해 "피진정인(A중학교)은 (B씨에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현재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등의 태도를 드러낼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며 "이는 일방적인 사과문 작성 요구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진정인이 계약제 교원에 대해 (교내특별과제가 아닌) 해고도 의결할 수 있어 (B씨에게 사과문을 쓰라고 한 행위에) 강제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고, 한 차례 제출된 사과문에 대해서도 내용의 적절성을 판단해 다시 작성하도록 요구한 점을 종합하면 진정인(B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인권위는 "(A중학교의) 사과문 요구에 대해서만 판단했을 뿐 사건 진정의 원인이 된 B씨의 SNS 게재 행위의 적정성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A중학교 "해임 또는 교내특별과제만 가능... B씨 배려한 것"

A중학교 측은 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오는 5월 중순까지 제출할 답변을 준비 중"이라면서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교장 C씨는지난 1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학교는 (교원인사위원회가 열리게 된) 원인인 SNS 게시글 내용의 적정성에 대해 인권위가 판단해 주길 바랐지만, 그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는 일반 교원과 달리 기간제 교원에게 주의, 감봉 등이 아닌 해임 또는 교내특별과제만 부여할 수 있다"며 "당사자(B씨)에게 해임 처분을 내리면 가혹하다고 생각해 학부모에게 사과하고 그 사과문을 네이버 밴드에 올리는 정도로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B씨의) 첫 번째 사과문을 받아보니 학부모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내용이어서 '재작성하면 어떻겠나'라고 조치한 것"이라며 "(이후 B씨의 인권위 진정이 있었고) 인권위의 권고가 나오기 전까지 (교원인사위원회는) 해당 안건을 더 진행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신상 공개된 B씨... '교권보호' 대처도 도마 위

한편 학교가 학부모 민원엔 곧장 교원인사위원회를 연 반면, 네이버 밴드에 신상이 공개돼 어려움을 겪은 B씨의 교권보호위원회 신고엔 뒤늦게 대처했단 지적도 나왔다.

B씨는 "학부모가 개인 사적 공간(SNS)을 검열하고 모욕하기 위해 네이버 밴드에 글을 올려 사이버상 문제를 야기했다"며 학부모의 글 게시 이틀 후인 지난해 9월 23일 교권보호위원회에 이를 신고했다.

학부모의 문제 제기(9월 21일)로 인한 교원인사위원회(9월 25일)가 나흘 만에 열린 반면, 교권보호위원회는 신고(9월 23일) 한 달 뒤(10월 24일)에야 열렸고, 해당 학부모의 행위는 교권 침해로 인정됐다. B씨에겐 4일 특별휴가를 부여했고, 해당 학부모에겐 재발 방지를 권고했다.

이러한 상황에 오히려 학부모회가 나서 9월 25일 회의를 열었고 학교의 대처를 지적했다. 학부모회는 "(해당 학부모가) 개인 게시물을 밴드에 올리는 자체가 엄연한 불법이고, 해당 선생님의 잘못 여부와 상관없이 즉시 삭제됐어야 했다"며 "(그러나) 학교 관계자들이 다 보는 밴드에 그 게시물이 3일이나 게시됐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아이들 SNS에도 해당 선생님에 대한 비하와 욕설이 올라오고 있다"며 "비판이 아닌 비난은 학교가 끊어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장 C씨는 "학교에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본 경험이 없어 교육청과 변호사 쪽에 법률자문을 구하는 등 진행 과정이 있었다"며 "매뉴얼이 있긴 하나 절차를 공부하며 이행하다 보니 지연됐다. 다만 날짜를 최대한 지키고자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B씨는 구두로 계약연장을 요구했으나 이후 계약만료된 것으로 확인됐다. 교장 C씨는 "기간제 교사는 1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뤄지는데 채용공고에 B씨가 원서를 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태그:#기간제교사, #교권침해,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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