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쿄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입니다. 그만큼 각종 정보가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관광지를 이미 방문했다면 이번엔 '도쿄 말고, 근교'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이 연재에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도쿄 도내와 도쿄 근교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색다른 일본 여행지를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기자말]
*1부에서 이어집니다(관련 기사: 도쿄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 후지산 구경은 덤 https://omn.kr/288pt ).

일본 도카이도(東海道)는 도쿄가 에도였던 시절, 교토에서 에도를 잇는 495.5km의 가도(街道)였다. 지금 도카이도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대체하고 있지만, 도쿄 근교의 하코네산에는 과거 하코네 하치리(箱根八里)라고 불렸던 옛 도카이도가 남아 있다.

도카이도를 따라 걷는 길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하다. 일본에서는 새 가족이 태어나면 다음 세대를 위해 삼나무나 편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올곧게 자라 목재로 사용하기 좋은 데다, 50년이면 벌목할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기 때문이다. 

400년 된 찻집, 13대째 주인이 운영하는 곳
 
도카이도의 옛길 하코네 하치리는 도쿄 근교의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 있다
▲ 하코네 산을 트레킹하는 여행자 도카이도의 옛길 하코네 하치리는 도쿄 근교의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 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지난 1월 방문한 하코네산. 이 산은 칼데라 지형이어서 정상으로 향할수록 길이 꽤 가팔라진다. 다음 목적지는 하타주쿠에서 2.4km 떨어진 에도 시대의 휴게소, 아마자케차야(甘酒茶屋)다.

이 구간은 자동차로 가더라도 경사 10도의 급 커브 구간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난코스다. 하코네 나나마가리(箱根七曲り)라는 이 구간은 자동차나 오토바이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드라이빙 코스다. 시간이 없거나 가파른 경사가 부담되는 여행자들은 하타주쿠 마을에서 1시간에 1~2대 있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지금은 시대를 잘 만나 버스를 탈 수 있지만, 에도 시대 사람들은 아마 눈물을 흘리며 이곳까지 올라왔을 것이다. 실제로 도중에 나오는 가시나무언덕(橿木坂)에는 여행자들이 이 길을 지나며 얼마나 험한지 '도토리만큼의 눈물을 흘렸다(どんぐりほどの涙こぼるる)'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도착한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곳이 바로 이 아마자케차야였다. 아마자케(甘酒)는 일본의 감주를 뜻한다. 하코네 정상 부근의 이 찻집은 에도 초기부터 영업을 시작해 4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은 13대째 주인이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옛 우키요에 자료를 보면 당시 이 근방에 이런 찻집이 연달아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카이도가 가장 번성했을 때는 9개의 찻집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건물은 에도 시대 그대로의 건물이 아니라, 옛 건물의 자재를 활용해 새로 지은 건물이다.
 
화롯가에서 잠시 쉬며 옛 여행자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 아마자케차야의 내부 화롯가에서 잠시 쉬며 옛 여행자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이곳에선 13대 째 이어내려오는 비법의 일본 감주를 판매한다
▲ 4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아마자케차야  이곳에선 13대 째 이어내려오는 비법의 일본 감주를 판매한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처음 걷기를 시작할 때는 날씨가 맑았는데 정상에 가까워오자 점점 날씨가 흐리고 추워지기 시작했다. 건물 내부에 전통 방식의 화로가 있어 잠시 온기에 의지해 몸을 녹였다. 주문한 일본 감주를 마셔보니 우리의 식혜와 달리 미음을 마시는 것처럼 걸쭉한 데다 은은한 단맛이 입맛을 다시게 했다.

지금도 일본에서 감주는 '마시는 링거'라고 불리는데, 이 음료는 당시 산을 오른 사람들에게 충분한 당분을 제공해 줬을 것이다. 화로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감주를 마시고 있자니 느긋한 안도감이 들었다. 아마 당시 여행자들도 이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어쨌든 여기까지 왔다는 건, 머지않아 내리막이 시작된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여성이 하코네산을 넘을 수 없었던 이유

찻집을 나와 2km 정도를 걷다 보니 나무 사이로 새파란 호수가 보였다. 하코네산의 호수 아시노코(芦ノ湖)다. 곧 하코네 신사의 대형 주황색 도리이가 눈앞에 등장했다. 여기서부터는 관광객들이 많은 지역이다. 하코네 하치리를 여행한 시점은 2024년 1월말이었는데, 최근 일본은 오버투어리즘 이슈로 어딜가나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호수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하코네 신사가 나온다.  왼쪽으로 향하면  1604년 에도 막부가 조성한 삼나무 가로수 길이 있다. 거대한 삼나무가 늘어선 기분 좋은 흙길이 500m정도 이어진다. 당시 막부가 길에 삼나무를 심은 이유는 나무가 여름에는 햇빛을 가리고 겨울엔 차가운 바람을 막아 주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서쪽에서 적이 침입해 올 경우 나무를 베어 길을 막기 위한 방어의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에도 막부가 삼나무 길을 조성할 때만 해도 오사카의 도요토미 가문이 아직 남아 있었고, 서쪽의 다른 영주가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400여년의 역사를 지난 삼나무길이 펼쳐져 있다
▲ 에도 시대의 삼나무길을 지나는 여행자  400여년의 역사를 지난 삼나무길이 펼쳐져 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하코네는 이렇게 서쪽의 적으로부터 에도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 요충지기도 했다. 때문에 에도 막부는 1619년 에도를 드나드는 사람이나 짐을 단속하기 위한 검문소인 하코네 세키쇼(箱根関所)를 지었다.

지금도 하코네 세키쇼를 방문할 수 있다. 옛 터를 발굴하여 전통 건축 기법으로 복원한 전시관이다. 내부에는 통행증 검사소, 감옥, 마구간, 경비초소, 부엌, 화장실 등 당대의 건물들과 실물크기의 인형, 당시 사용한 물건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한쪽은 호수, 한쪽은 산으로 가로 막혀 있어 여행자들은 반드시 이 검문소를 지나가야했다.
▲ 초소에서 바라본 하코네 세키쇼(相根關所) 한쪽은 호수, 한쪽은 산으로 가로 막혀 있어 여행자들은 반드시 이 검문소를 지나가야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당시 쓰코테가타(通行手形)라 불렸던 통행증은 자신의 마을 영주나 주지스님, 마을 관리에게 받았다. 주로 이름, 나이, 거주지와 머리 모양, 신장, 체중, 점의 위치 등 신체적 특징을 적었다.

이에 따르면, 에도 시대에는 남성보다 여성의 통행증 검사가 더 엄격했단다. 에도 시대의 '이리뎁포 데온나(入り鐵砲に出女)' 라는 말은 어떤 총포도 에도에 들어오지 못하고, 어떤 여성도 에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여성의 출입이 더욱 엄격하게 관리되었던 이유는 지방 영주들의 부인이나 자식이 몰래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단다. 당시 교대제로 지방 영주들은 2년에 한번 에도를 방문해야 해고, 처자식들은 에도에 계속 머물러야했다고. 이들은 사실상 막부의 인질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성 여행자들은 히토미온나(人見女)라고 불리는 노파가 몸수색을 맡았다고 한다. 자칫 이 노파의 심기라도 거스르면, 통행증이 있어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였다. 실제로 통행증의 문제로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간 경우도 있었고, 도중에 아이를 출산한 여성은 통행증 인원과 다르다는 이유로 통과하지 못하기도 했다.

반면 남성은 통행증이 필요하긴 했지만, 경우에 따라 통행증이 없어도 통과가 가능했다. 여성 통행에 대한 규칙이 완화된 것은 에도 막부 말기에 이르러서였다. 

실제로 이곳에는 통행증 없이 검문소를 지나다가 처형됐다는 소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즈오카 이즈 출신의 오타마상(お玉さん)이라는 소녀다. 그녀는 에도의 삼촌 집에서 하녀 일을 하다가, 이즈에 있는 가족이 그리워져 몰래 잠시 삼촌 집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가난한 하녀 아이에게 통행증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몰래 하코네 산을 넘다가 발각되어, 효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당시 검문소를 피하다 걸리는 경우에는 대부분 극형에 처해졌다. 이 근처에는 그녀가 처형당했다는 오타마가연못(お玉が池)이 남아있다. 
 
여성이 에도에서 나가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몸수색을 하는 여성 관리가 따로 있었다.
▲ 하코네 세키쇼의 여성 검문  여성이 에도에서 나가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몸수색을 하는 여성 관리가 따로 있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하코네 세키쇼에는 두 개의 출입구가 있다. 에도 방향과 교토 방향이다. 나는 도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에도 방향 문으로 들어가서 교토 방향 문으로 나왔다.

그 시절의 여성들에겐 이 검문소를 지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겠지만, 과거의 법칙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다. 잠시 문 앞에 서서 가야할 길을 바라봤다. 이대로 서쪽으로 향하면 미시마가 나오고, 계속 길을 걸으면 마침내 교토에 닿을 것이다.

언제나 이야기와 이야기를 이어온 길

이제 에도의 옛길을 벗어나 도쿄로 돌아갈 시간이다. 관광객으로 빽빽한 버스를 타고 하코네 유모토 역을 향해 내려갔다. 올라올 땐 하루 종일 걸렸지만 버스로 내려가자 4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길은 언제나 이야기와 이야기를 이어왔다. 그동안 여행했던 길들을 되돌아봤다. 기원전 312년 건설된 아피아 가도는 로마 최초의 군사도로였고, 이후 로마 통일을 이끌었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의 장건이 개척한 실크로드는 동서양의 물건과 사상, 문화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유럽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티아고 성인을 위한 순례길이기도 했지만,  무어인에게 맞선 카톨릭 교도들의 국토회복운동 구심점이기도 했다. 열차로 지났던 시베리아 횡단 루트는 러시아가 동쪽으로 진출하는 길이기도 했고, 연해주의 우리 동포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떠나야 했던 길이기도 했다. 길은 마치 핏줄처럼 한 세계를 고동치게 만든다. 

에도 시대의 도카이도 역시 다음 이야기를 잇는 역할을 한다. 1603년 에도 막부가 세워졌던 당시, 에도에는 아직 변변한 성도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곳이 정치적, 행정적으로 오사카나 교토를 능가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물자, 기술 등이 오갈 길이 필요했다. 막부는 도카이도(東海道)를 시작으로 나카센도(中山道), 고슈가도(甲州街道), 오슈가도(奥州街道), 닛코가도(日光街道) 등 5개의 가도(街道)를 조성했다.

그러자 역참을 중심으로 여관, 식당, 유곽, 가게 등이 번성하며 화폐가 유통되고, 시장경제가 순환되었다. 그리고 지방 영주들이 2년마다 에도를 방문하는 참근 교대제는 영주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막부의 중앙집권을 강화시켰다. 참근 교대 행렬뿐 아니라 조선통신사 일행, 네덜란드 시볼트 일행 등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이 길들을 걸어서 에도로 향했다.

나중엔 참배 여행을 떠나는 일본 서민들도 늘어나기 시작하며, 일본에선 유럽보다 100여 년 일찍 여행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다. 이 길들은 각 영지로 흩어져 있던 일본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통로이기도 했다. 길을 따라 일본 전역의 모든 문화가 에도로 모이고, 한편 에도의 문화가 전국으로 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도쿄는 에도로 향하는 이 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여행정보 

-하코네 아마자케차야 (箱根 甘酒茶屋)
에도 초기부터 영업을 시작해 13대째 주인이 이어내려 오고 있는 도카이도의 옛 찻집이다. 이곳에서는 전통방식 그대로 쌀과 누룩을 사용해 감주를 만들고, 설탕이나 다른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감주 외에도 간식거리도 판매 중이다. 감주 1잔 500엔, 키리모찌 1접시 600엔,
【주소】 神奈川県足柄下郡箱根町畑宿 二子山 395-28
【전화 번호】 0460-83-6418
【가는 법】 하코네 유모토에서 하코네 등산 버스 탑승, 「아마자카 찻집」하차
【홈페이지】 https://www.amasake-chaya.jp

-하코네 세키쇼 · 하코네 세키쇼 자료관 (箱根関所・箱根関所資料館)
하코네 세키쇼는 1619년에 지어져서 에도의 방위를 맡은 검문소다. 2007년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와 옛 자료를 바탕으로 건물을 복원하고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바로 옆에는 자료관이 있는데, 당시 통행증이나 가마, 참근 교대 행렬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입장료는 성인 500엔, 어린이 250엔이며, 하코네 프리패스가 있으면 100엔 할인받을 수 있다.
【주소】 神奈川県足柄下郡箱根町箱根1番地
【전화 번호】 0460-83-6635
【가는 법】 하코네 유모토에서 하코네 등산 버스 탑승, 「하코네 세키쇼」하차
【홈페이지】 https://www.amasake-chaya.jp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도쿄, #하코네, #하치리, #도쿄말고근교, #에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