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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일째 고공 농성 중이다.
▲ 박정혜, 소현숙 여성노동자 103일째 고공 농성 중이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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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승계 없이 공장 철거는 없습니다. 투쟁 없는 승리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고용 승계 투쟁으로 쟁취해서 꼭 살아 내려갑니다. 동지들과 함께 노동자의 봄을 맞이하려고, 불타버린 공장에 올랐습니다. 여기가 노동자의 길이고 희망입니다."

지난 18일, 불타버린 구미 옵티컬하이테크 공장을 찾았다. 입구에선 같은 처지인 아사히글라스, KEC 일본계 외국인투자기업(아래 외투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쫓겨난 노동자들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공장 벽면에는 103일째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박정혜·소현숙 노동자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펼침막이 보였다. 방문의 목적은 별 이유가 없었다.

몸과 마음이 원했다. 외투기업에서 노동하는 같은 처지의 마음이 닿았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박정혜·소현숙 노동자와 함께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

일본에 맞선 1931년 강주룡, 2024년 박정혜·소현숙 여성노동자 고공농성
  
언론에 보도된 강주룡의 모습 (출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 을밀대 강주룡 언론에 보도된 강주룡의 모습 (출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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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혜와 소현숙 여성노동자에게서 일제 강점기 평양 평원고무공장에서 최초로 고공농성을 했던 강주룡을 봤기 때문이다. 1931년 5월 16일, 평원고무공장은 노동자들에게 임금 삭감 계획을 통보한다. 이에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항의했다.

여성 노동자 49명이 단식 농성 돌입한다. 평원고무공장은 농성에 참여하려는 49명을 모두 해고하겠다고 협박한다. 이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들은 단식 농성에 들어간다. 하지만 농성이 시작되자, 자본가들은 경찰을 앞세워 농성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낸다.

강주룡은 자본가의 횡포를 알리기 위해 제 목숨을 바치겠다고 각오한다. 그녀는 평양에서 유명한 장소였던 '을밀대' 지붕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연설한다. 그 당시 기록에 의하면 발언은 이렇다.

"우리는 49명 파업단의 임금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평양의 2300명 고무공장 직공의 임금감하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서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2300명 우리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하여 내 한 몸둥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배워서 아는 것 중에 대중을 위해서는 (중략)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이래서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 위에 올라왔습니다.

(...) 나는 평원고무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감하 선언을 취소하기까지는 결코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임금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자본가의 (중략) 하는 근로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 그러하고 여러분, 구태여 나를 여기서 강제로 끌어낼 생각은 마십시오. 누구든지 이 지붕 위에 사다리를 대놓기만 하면 나는 곧 떨어져 죽을 뿐입니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그 당시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밀대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강주룡과 노동자들의 절박임이 먼저였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또다시 되풀이하는 2024년 대한민국의 민낯
 
불타버린 공장에 걸린 현수막
▲ 현수막 불타버린 공장에 걸린 현수막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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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8일, 93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두 명의 여성 노동자는 또다시 공장 옥상에 올라갔다.

일본 자본인 니토는 한국에서 니톰스코리아, 한국니토덴코, 한국니토옵티칼,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한국니토덴코는 1987년 일본니토덴코 서울판매소로 출발 2000년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등록한 한국니토덴코로 재설립했다.

한국옵티컬은 니토덴코의 자회사로써 2003년 설립 이후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해서 LG전자에 납품하다가 2022년 10월 대형화재로 구미공장이 불탔다. 니토덴코는 공장 화제 이후 1300억 원 이상의 화재보험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회사는 청산을 결정하고, 200여 명의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통보했다.

하지만 희망퇴직을 거부한 13명의 노동자는 니토덴코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한국니토옵티칼로의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구미공장 화재 이후 평택에 위치한 니토옵티칼은 구미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생산물량을 평택공장으로 이관했다. 이와 함께 30여 명을 신규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 일터로 돌아가자
▲ 멈춰선 공장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 일터로 돌아가자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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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컬 자본은 고용 승계를 요구하는 13명의 노동자에게 인당 4000만 원씩, 총 2억 원의 손배가압류, 부동산 전세보증금 강제 집행, 공권력 투입, 공장철거, 노동조합 사무실 인도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용 승계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대응하고 있다.

옵티컬 자본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50년 토지 무상 임대와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아왔다.

전국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최현환 지회장에 따르면 "회사는 2004년 공장이 가동될 때부터 지난해 10월 불이 나서 폐업할 때까지 7조7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니토덴코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18년간 세후 이익만 2000억 원을 벌었다"라고 말하며 "이와 함께 6조 원가량의 원재료 판매율과 로열티까지 총 매출액의 82%를 일본으로 챙겨갔다. 그동안 니토덴코가 회사에 투자한 금액은 220억 원에 불과하다"라고 외투기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동자들의 신발과 모자
▲ 흔적 노동자들의 신발과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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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인 외투기업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외투기업의 경영 형태가 이러함에도 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은 외국인투자기업들과 오찬간담회에서 외국인투자기업이 한국에서 적극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킬러 규제'를 혁파하고, 투자 인센티브를 확대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윤 대통령은 "외국인 투자가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등 투자 환경 개선에 더욱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또 "여러분이 제공하는 고용 기회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그야말로 고소득 양질의 좋은 일자리이기 때문에 더더욱 의미가 크다"고 외투기업을 치켜세웠다.
  
노동자는 쓰다가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 밥 한 끼 연대 노동자는 쓰다가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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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기업 노동자들, 밥 한 끼 작은 연대를 시작으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자!

옵티컬, 아사히, KEC 는 외투기업이다. 한국지엠도 외투기업이다. 외투기업이면서 산업은행이 17.0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하지만 2018년 군산공장 폐쇄, 2000여 명의 정리해고 등 노동자들의 임금·복지·단체협약의 일방적인 양보를 바탕으로 체결된 GM 본사와 산업은행의 합의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2027년이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협상의 한 귀퉁이도 자리할 수 없는 산업은행과 GM 본사와의 그들만의 협상이 또다시 진행된다. 외투기업에 맞서 고공농성 중인 박정혜·소현숙 여성노동자의 처절한 저항이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박정혜, 소현숙 노동자에게 밧줄로 식사를 올린다
▲ 밥 한 끼 박정혜, 소현숙 노동자에게 밧줄로 식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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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모든 국민의 권리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금, 바로, 고공농성 중인 옵티컬 여성노동자들과의 밥 한끼의 연대를 시작하자. 거창하지 않지만 그 마음이 소중한 밥 한 끼의 연대.
 
노동자는 쓰다가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 밥 한 끼 연대 노동자는 쓰다가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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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지엠, #옵티컬, #니토덴토, #외투기업, #고용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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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대외정책부장 김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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