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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 신선대는 거제의 대표 관광지다. 유명한 명소인 만큼 특히 이 주변은 차도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 조금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어느새 한적한 해안 도로를 만날 수 있다.

함목해변을 지나 다포항에 이르렀다. 잔잔한 바다 위로 길게 이어진 다리가 문득 눈에 띄었다. 후릿개 다리라고 했다. 다포 마을을 '후릿 그물로 물고기를 많이 잡던 갯가'라는 뜻에서 후릿개라 불렀는데, 이곳에 해상 데크길이 놓여 후릿개 다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리는 주홍인 듯 빨강인 듯 환하게 밝았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만날 거라곤 생각지 못한 색이었는데, 빠알간 게 예뻤다. 다리 바로 아래 푸른 수면도 똑같이 붉은색으로 길게 물들어 있었다.

잠시 후, 후릿개 다리를 뒤로 한 채 다시 해안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시선은 저절로 차창 밖 바다 쪽으로 향하게 된다.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름답다'라는 말로도 부족한 풍경, 여차·홍포해안비경

작년, 보름동안이나 거제를 여행 했지만 올해 거제를 다시 찾은 이유였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있었다. 특히 마음에 두고 있던 곳이 바로 이곳, 여차마을에서 홍포마을로 이어지는 여차·홍포해안비경을 볼 수 있는 해안도로였다.

여차·홍포해안비경은 거제 7경으로도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광이다. 하지만 비경을 볼 수 있는 해안도로가 위치상 거제에서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다른 명소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더욱이 가는 길 중간 중간이 비포장도로다. 작년 여행 때 그래서 망설였던 곳이었는데, 이번엔 나보다 운전이 능숙한 남편이 함께였기에 갈 수 있었다.

빼어난 풍경이 펼쳐지는 이곳엔 총 세 군데의 전망대가 있다.

가장 먼저 병대도 전망대에 닿았다. 전망대는 단출했다. 입구에는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섬들의 이름을 알려 주는 작은 안내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섬들의 이름을 알려주는 병대도 전망대 안내문
 섬들의 이름을 알려주는 병대도 전망대 안내문
ⓒ 배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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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병대도, 소병대도, 매물도, 소매물도, 가왕도'

섬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나직이 되뇌며 전망대에 올랐다. 그런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름답다'라는 말로도 턱없이 부족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진으론 결코 담아낼 수 없는 비경
 사진으론 결코 담아낼 수 없는 비경
ⓒ 배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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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푸른 바다 위,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린 듯 가만히 떠 있었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 계속 바라봤던 것 같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것 같다고 하면 과장일까? 만약 신선들이 사는 곳이 있다면, 이곳일 거였다. 선계(仙界)를 잠시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왜 여차·홍포해안'비경'이라 하는지 알만 했다. 작은 전망대는 숨은 비경을 품고 있었다. 

선계의 풍경 속에서 만난 한국 토종 돌고래, 상괭이
  
두 번째 전망대로 향했다. 이곳의 풍광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전망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전망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 배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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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망대 이름이 따로 적혀 있지 않은 이곳엔, 입구에 한국의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와 바다깊이 잠수하는 새인 회색머리아비에 대한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한국토종돌고래 상괭이에 대한 안내문
 한국토종돌고래 상괭이에 대한 안내문
ⓒ 배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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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상괭이는 국내 서해와 남해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적혀 있었다. 과연 이곳에서 정말로 상괭이를 본 사람이 있을까 싶어 잠시 인터넷을 찾아봤다. 보지 못했다는 글이 더 많았지만, 어느 낚시꾼이 근처 해변에서 낚시를 하다 실제로 상괭이를 봤다는 경험담 하나가 있었다.

잠시 두근거렸지만, 사실 직접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보고 싶었고, 그건 함께 간 아들이 더 그랬다.

아들은 거제에서 돌고래를 볼 수 있는 체험파크에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거제조선해양문화관에 갔을 때였다. 이곳의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을 들여다봤다. 이쪽저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가 보였다. 체험파크는 해양 문화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수족관을 이리저리 헤엄치고 있는 돌고래가 망원경 속으로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앞, 탁 트인 거제의 푸른 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바다가 아닌 곳에 사는 돌고래를 아이에게 보여줄 순 없었다. 아들도 머리로 이해는 하는 듯 했지만, 예쁜 돌고래를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7살 어린이는 엄마에게 많이 서운해 하던 참이었다.

전망대 바닥에 앉았다. 이곳을 찾은 몇 안 되는 여행객들마저 떠나자 우리만 남았다. 주변은 조용했다. 가만히 있자니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괭이를 기다리며 바라봤던 풍경
 상괭이를 기다리며 바라봤던 풍경
ⓒ 배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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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분쯤 지났을까? 기대감과 바람과 실망이 뒤섞인 시간을 지나자, 저 멀리 뭔가가 보였다. 잔잔한 수면 위로 검은색인 듯 회색인 듯한 뭔가가 떠올랐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또 다시 뭔가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햇살을 받아 맨들맨들했다.

전망대 입구에 있는 상괭이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상괭이라는 명칭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나오는 상광어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며, 물 밖으로 나온 몸에 묻어 있는 물이 빛에 반사되어 광택이 나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몸체를 다 드러내지 않고 머리 부분만 보여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 가족은 우리가 본 게 상괭이가 맞다고 믿었다.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면 위로 나오길 반복하는 상괭이는 총 세 마리 같았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 곁에 이름 모를 새가 계속 맴돌았다. 둘은 꼭 장난치는 듯 보였다.

최근에는 상괭이 얼굴이 미소 짓는 것처럼 보여 '미소 고래'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난 아주 멀리 있는 상괭이를 봤을 뿐이지만, 내내 바닷속을 노닐며 장난치고 웃고 있는 상괭이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린 한참을 그렇게 바다를 바라봤다. 상괭이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을 때야 마지막 전망대로 향했다. 둥그렇게 곡선을 그린 듯 산에 폭 감싸인 여차해안이 내려다보였다.

선계의 풍경과 바닷속을 자유롭게 노니는 상괭이.
나는 결코 이곳의 풍경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글쓴이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태그:#거제여행, #여차홍포해안비경, #상괭이, #거제7경, #여차홍포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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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여행하며 자주 글자를 적습니다. <그때, 거기, 당신>, <어쩜, 너야말로 꽃 같다> 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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