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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극장 빅룸의 인형 극장. 칼즈배드 동굴의 대표적인 지질학적 형성물로 자연이 빚은 예술품의 극치를 보여준다. ⓒ 백종인
 
이토록 찬란한 지하 세계가 있을까? 자연이 빚어낸 지하 궁전은 인간이 창조한 지상의 문명보다 정교하고 화려했다. 

미국 뉴멕시코주 과달루페산맥 북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칼즈배드 동굴(Carlsbad Caverns)에는 길고 곱창처럼 구불구불한 터널과 축구장 6배에 달하는 석회암 방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다양한 모습의 종유석과 석순,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서로 만나고 얽히며 환상의 세계를 연출하고 있었다. 침침했던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이 창조한 환상적 아름다움에 취해 정신이 아득해졌다. 

1898년, 16세의 짐 화이트(Jim White)는 길 잃은 소를 찾아 치와와사막을 통과하던 중 사막 언덕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불이 났다고 생각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말을 나무에 묶고 덤불을 헤치며 다가갔지만, 불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연기 냄새도 나지 않았으며 불꽃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대신, 마치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 큰 구멍이 나타났고 그 검은 구멍 안에서는 박쥐들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며칠 후, 그는 철사와 나뭇조각으로 사다리를 만들어 동굴 안으로 들어갔고 21m를 내려간 후에야 동굴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그가 발견한 신기한 모습들. 그는 여기에 '악마의 샘', '악마의 커튼', '악마의 의자', '마녀의 손가락 등 이름을 지어주었고, 이들 이름은 지금까지 그대로 불리고 있다. 이후, 1930년 5월 14일 칼즈배드 동굴은 미국의 국립공원이 되었다. 

수백만 년 걸쳐 자연이 만들어낸 석회동굴 

칼즈배드 동굴은 먼 옛날 바다였던 과달루페산맥과 이어진 곳으로 암초가 땅 위로 솟아올라 산맥이 된 것과 반대로 땅속에 묻힌 암초가 산성수에 녹아 만들어진 석회동굴이다.

수백만 년에 걸쳐 지하수가 동굴로 스며들면서 종유석과 석순이 생기고, 이들은 다양한 모양으로 발전되어 보는 위치와 보는 이의 해석에 따라 부처님, 보살님, 궁전의 신하들, 커튼, 폭포수, 오페라 무대, 파이프 오르간, 인형 극장, 식탁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됐으며 그렇게 사람들 머리에 새겨지게 되었다. 또 짐 화이트가 목격했던 박쥐 떼는 실제로 여름철 동굴 내부에 서식하고 있으며, 여름에 이곳을 방문하면 박쥐 쇼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과달루페산맥 국립공원에서의 하이킹을 마친 후, 4월의 첫날 이번 여행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뉴멕시코주의 칼즈배드 동굴 국립공원을 찾았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니 대규모의 주차장은 이미 도착한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하 땅속 관광임에도 땅 위의 관광 안내소는 규모가 상당했다.
 
칼즈배드 동굴 입구 동화 속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고래 입으로 빨려 들어가듯 시커먼 입구를 향하여 구불구불 조성된 길을 걸어 내려갔다. ⓒ 백종인
 
칼즈배드 동굴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고래 입으로 빨려 들어가듯 시커먼 입구를 향하여 구불구불 조성된 길을 걸어 내려갔다.

차츰 바깥 세계의 빛이 사라질 무렵 머리 위에서는 돌로 만들어졌다기에는 믿을 수 없는 금실로 짠 듯한 섬세한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듯했고 바닥에서는 크고 작은 장승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천정에 매달린 고드름 같은 종유석들 금실로 짠 듯한 섬세한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듯했다 ⓒ 백종인
 
6.3 빌딩 높이의 땅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화려한 지하 궁전인 빅룸(Big Room)으로 내려가는 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수도 있고 휘감기듯 나선형으로 조성된 가파른 내추럴 엔트런스(Natural Entrance) 길을 따라 2km 거리를 걸어 내려갈 수도 있다.

텍사스 최고봉에 올랐던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빅룸이 베르사유 궁전 내부라면, 내추럴 엔트런스는 궁전까지 가면서 볼 수 있는 정원이라 하겠다. 
 
지하 정원의 독특한 암석 지형 얼어붙은 폭포수 같기도 하고 영화 속 외계인 같기도 하다. ⓒ 백종인
 
석가모니 모습을 한 석순 촛불 앞에 앉아있는 부처님으로 보인다. ⓒ 백종인
 
지하 정원은 환상적이었다. 독특한 암석 지형은 때로는 얼어붙은 폭포수 같기도 하고 영화 속 외계인 같기도 하였다.

잠시 건너편을 바라보는데 촛불 앞에 앉아있는 석가모니 모습이 보였다. 어디선가 "어머나, 부처님이네"라는 한국어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나만 그렇게 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품, 마술쇼   
 
종유석과 석순의 조화 내 눈에는 지하 궁전을 지키는 신하들로 보인다. ⓒ 백종인
 
 
피크닉 테이블 석순 머리 부분이 평평한 것이 연못가에 설치된 피크닉 테이블 같다. ⓒ 백종인
 
종유석과 석순이 연출하는 마술 쇼는 지하 정원 길을 지나 도착한 빅룸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길이 1200m, 폭이 191m, 높이 110m의 빅룸은 세계에서 7번째, 미국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석회동굴 방으로 거대하면서 섬세하고 화려하고 정교한 갖가지 형상의 종유석과 석순, 석주, 이들이 만들어낸 기묘한 동굴 등 숨 막히는 전경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은 올라가고 내려가고 휘감기고 꼬이면서 미로처럼 연결되어 경이로운 형상을 만들어냈고 석회암 속에 포함된 철분과 광물질이 만들어 낸 오묘한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품의 극치라고나 할까? 
 
궁전의 커튼 궁전 댄스홀 창에 설치한 커튼처럼 보인다. ⓒ 백종인
 
 
빅룸의 거대한 석순 석순은 거대하면서 섬세하고 화려하고 정교하다. ⓒ 백종인
 
빅룸의 환상적인 종유석 파노라마 얼어붙은 고드름을 닮은 빽빽한 종유석 파노라마를 보고 있자면 비현실적인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 백종인
 
빅룸에서의 종유석과 거대한 석순의 만남 지하 세계로 들어 온 외계인이, 촘촘하게 내려온 날카로운 종유석 창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다. ⓒ 백종인
 
평평하게 잘 닦여진 2km에 달하는 길을 따라 걸으며 수백만 년에 걸쳐 자연이 창조한 비현실적인 지하 세계에 빠져 들었다.

십여 년 전 <잃어버린 지구 속으로>(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라는 영화를 본 이후 이따금 땅속 세상을 상상해보곤 했는데,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지하 세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운 세계였다.  

사실 칼즈배드 동굴 국립공원에는 빅룸 이외에도 100개가 넘는 석회동굴이 있으며, 이 중 5개는 관리원(Ranger)의 안내를 받으며 볼 수 있다. 원래는 빅룸을 보고나서 그 아래 깊은 곳에 있는 왕의 궁전(King's Palace)을 볼 계획이었으나, 우리가 도착했을 때 왕의 궁전 관광은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빅룸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어 예약을 안 했던 것이 그제야 후회되었다.
 
여행에서는 이렇게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칼즈배드 동굴 여행 역시, 왕의 궁전을 보지 못한 채 90%의 관광이 된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칼즈배드 동굴 국립공원을 방문하려면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사전 예약은 한달 전부터 가능하며 https://www.recreation.gov/ticket/234637/ticket/10086811이나 877-444-6777 으로 하면 된다.

태그:#칼즈배드석회동굴, #짐화이트, #과달루페산맥, #내추럴엔트런스, #빅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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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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